美링컨박물관 에세이 대상 수상 이미한 양

  • 입력 2005년 4월 26일 0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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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었다.

19일 미국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링컨박물관 개관 기념행사에서 에세이 대상 수상자로 참석해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에세이를 낭독한 한국계 이미한(17) 양. 이 양은 에세이의 소재가 됐던 한글학자 고 정인승(鄭寅承) 박사의 외손자의 딸일 뿐 아니라 정 박사와 함께 민족교육에 앞장섰던 고 이병학(李丙學) 선생의 친증손녀였다.

“내가 아는 자유는 곧 내 언어의 자유”라며 일제의 한글압살정책에 대한 저항정신과 자유의 소중함을 연관시킨 이 양의 에세이는 하루빨리 독립해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할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했던 할아버지들의 염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인승, 이병학 선생은 1921년 전북 고창고보 교사로 함께 부임하면서 우정을 키워갔다. 당시 ‘북에는 오산, 남에는 고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족교육을 지향하던 고창고보에서 정 선생은 영어를, 이 선생은 체육을 가르쳤다.

정 선생과 친하게 지냈던 독립운동가 김승옥(金升玉) 선생의 3남 종학(77) 씨는 “정인승, 이병학 선생이 돈독히 지냈다고 들었다”며 “특히 정 선생은 ‘교과담당 이외의 시간에 한글을 가르칠 시간을 꼭 달라’는 조건으로 교사직을 수락해 학생들에게 한글과 함께 당시 금지됐던 고대사 강의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정 선생의 고대사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학생들로 교실 바닥은 물론 교실 뒤까지 꽉 찼다”며 “두 분 모두 민족교육의 선각자”라고 덧붙였다.

1935년 일제의 사학 탄압으로 두 사람은 고창고보를 떠나 정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으며 이 선생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 등과 함께 흥사단에서 일하다 보성전문학교(고려대의 전신) 훈육주임이 됐다.

두 사람의 우정은 대를 이었다. 서울대 의대 졸업 후 군의관으로 일했던 이 선생의 차남 봉기(鳳基·79) 씨와 서울대 국문과를 다녔던 정 선생의 차녀 덕모(74) 씨가 결혼을 한 것. 두 사람의 아들 종훈(鐘勳·45) 씨가 바로 이 양의 아버지이다.

‘미한’이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뜻. 할머니 덕모 씨는 “교포 TV방송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앞에서 에세이를 낭독하는 미한이의 모습이 나오더니 곧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이 화면에 비쳐졌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면서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울음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 양의 어머니 박유미(朴由美·45) 씨는 “미한이가 글씨를 읽고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옛날이야기와 동화를 많이 읽어줬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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