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盜 조세형 결국 좀도둑

  • 입력 2005년 3월 25일 18시 15분


코멘트

주로 부잣집을 상대로 절도행각을 벌여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얻은 조세형(趙世衡·67) 씨가 또다시 남의 집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24일 오후 8시 15분경 조 씨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치과의사 A 씨 소유의 3층 단독주택 담을 넘은 뒤 미리 준비한 드라이버로 화장실 창문을 뜯고 침입했다.

그는 안방 화장대 서랍 속에 있던 외제 손목시계 6점 등 165만 원 상당의 금품과 현금 45만 원을 훔쳤다. 그러나 창문에 설치된 사설경비업체의 전자감지기가 울려 경비업체 직원과 경찰이 1, 2분 간격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현관문을 나서다가 출동한 경찰 등과 맞닥뜨린 그는 드라이버를 흔들며 반항하다 3층 다락방으로 올라가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다. 100여 m를 도망치던 그는 경찰이 쏜 공포탄에 자신이 맞은 줄 알고 움찔하다가 경찰관들에게 잡혔다.

조 씨는 체포된 직후 자신을 가상의 인물인 ‘1956년생 박성규’라고 둘러대며 “고아 출신으로 40년 동안 노숙자 생활을 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문검사를 통해 체포 10여 시간 만에 그가 조 씨임을 확인했으며 조 씨도 마침내 실토했다. 그러나 범행 동기에 대해선 “노점상 밑천을 마련하려고 그랬다”고 계속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범행 이외에도 20일 오후 9시경 발생한 서교동 가정집 강도사건 역시 조 씨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당시 범인은 가정부를 흉기로 위협하며 안방 금고의 비밀번호를 대라고 협박하다 도주했는데 경찰은 집안에 남은 족적이 조 씨가 검거될 때 신고 있던 신발과 일치하며, 가정부도 조 씨가 범인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절도행각을 한 것으로 보여 여죄를 추궁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25일 조 씨에 대해 특수절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 씨가 절도행각을 시작한 것은 25세 때인 1963년 10월. 그동안 드라이버 하나만으로 부유층의 빈집을 13차례나 털었던 그는 3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돈 일부를 빈곤층에 나눠주어 주목을 받기도 했던 그는 새 삶을 살려고 애썼던 적도 있었다. 1998년 11월 출소한 뒤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4월에는 모 사설경비업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24일 침입한 주택은 이 업체가 경비하는 집이었다.

2000년 2월에는 본적지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30으로 옮겼으며, 동거하던 16세 연하의 이모 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뒤 결혼했다.

그러나 2000년 말 선교활동을 위해 일본에 간 그는 도쿄(東京) 시내의 주택에 침입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붙잡혔으며 4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4월 만기 복역 후 귀국한 조 씨는 서울 중랑구의 40평형 빌라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지냈다.

조 씨를 수사하면서 수십 년째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 온 최중락(崔重洛·77·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 씨는 “부인 이 씨가 돈을 벌고 있어 조 씨는 현재 경제적으로 괜찮은 편”이라며 “오랜 도벽 탓에 그가 또 담을 넘게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