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사람들]<上>‘건강과 가족’ 2개의 코드

  • 입력 2005년 1월 2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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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덕양어울림누리 내 인조잔디구장에서 축구동호인들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넘는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 고양=안철민 기자
21일 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덕양어울림누리 내 인조잔디구장에서 축구동호인들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넘는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 고양=안철민 기자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수도권 신도시에 주민들이 입주한 지 15년째. 200만 호 주택건설정책에 의해 급조된 ‘삭막한 베드타운’으로 각인됐던 신도시는 어느덧 생활문화의 변화를 선도하는 주거타운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묘목 수준이었던 공원의 나무들은 아름드리로 자라났고 그 아래서 주민들은 밤낮 없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긴다. 가족 단위의 외식객을 겨냥한 맛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각종 문화 예술공간도 늘어났다. 건강, 가족, 문화를 중심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수도권 신도시들의 새로운 풍경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21일 오후 9시. 귀가 떨어져 나갈 듯 매운 겨울밤이다. 그러나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덕양어울림누리 인조 잔디 축구장에 들어서자 마치 한여름 대낮 같은 분위기였다.

환하게 켜진 야간 조명을 받으며 중년 남자들이 고함을 질러가며 축구장을 질주했다.

“아니, 이렇게 추운 한밤중에도 축구를 하십니까?”(기자)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하겠죠. 그런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축구 동호인)

이날 축구장에서는 일산신도시, 행신지구, 원당지구 등 인근 지역 3개 축구 동호회가 친선게임을 벌였다. 머리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정도로 모두들 열심히 뛰었다. 40여 분씩 7게임을 뛰다 보니 오후 11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정항식 씨(46)는 “늦은 밤까지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것은 신도시의 자랑거리”라며 “축구를 하면서 이웃사촌도 사귀고 건강도 챙긴다”고 말했다.

입주 15년째를 맞은 수도권 신도시의 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은 ‘건강’과 ‘가족’이다. 지구상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인들 건강과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곳이 있으련만, 건강과 가족 중심의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여건이 신도시만큼 넉넉히 갖춰진 곳은 찾기 힘들다. 대형 공원과 호수, 맑은 공기가 있고 헬스클럽 등 운동시설도 서울 도심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21일 오후 8시 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 호숫가가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마스크를 함께 쓰고 나온 가족, 모자를 깊게 눌러쓴 노부부, 칼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즐기는 학생들….

분당지역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 ‘바람소리’ 회원들은 “매일 저녁 공원을 찾아 두세 시간씩 운동을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공원 측은 “한겨울이라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밤이고 새벽이고 건강을 챙기는 가족단위의 올빼미족들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분당 탄천에서 가족과 함께 매일 밤 조깅을 하는 일명 ‘야깅족’ 최상호 씨(38·분당 수내동)는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야경을 즐기다 보면 하루의 찌든 때가 언제 사라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중동(부천시)과 평촌(안양시), 산본(군포시)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평촌 중앙공원의 축구장은 잔디가 깔려 있지 않지만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중동신도시 중앙공원도 조깅족들로 항상 붐빈다.

21일 평촌 중앙공원에서 만난 박연희 씨(41·주부)는 “온종일 집안일과 애들한테 시달리다 보면 남편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했다.

가족 중심의 생활패턴을 겨냥한 쇼핑 및 외식공간도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일산신도시 장항동에 들어선 ‘라페스타’는 다른 대도시에선 보기 힘든 가족단위의 고객을 겨냥한 거리형 패션몰이다. 연면적 2만1000평에 300여 개의 매장이 있는데 주종을 이루는 옷가게들은 대부분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락내리락할 필요 없어 널찍한 거리를 거닐며 쇼핑 겸 산책을 즐기는 가족이 많다. 가족단위 손님의 눈길을 끌기 위해 외국 민속공연단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고양녹색소비자연대 김미영 사무국장(39·여)은 “베드타운 위주의 신도시는 직장과 주거의 불일치로 많은 불편들이 예상됐지만 교통을 제외하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며 “직장과 동떨어진 신도시가 오히려 가족중심의 문화가 뿌리 내리기에 알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성남=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안양=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가족외식 잦은 신도시…중국 음식점들 호황▼

자장면 열풍이 신도시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는 최근 2년간 대형 중국음식점 20여 곳이 들어섰다. 성남시 분당 역시 이름난 중국집들이 즐비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중국음식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도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불경기로 대형 고기 집과 한정식 식당이 문을 닫거나 손님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일산의 중국음식점인 ‘남궁’ 관계자는 “신도시는 어린 자녀와 부모로 이뤄진 가정이 특히 많은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찾기에 무난한 게 중국집”이라며 “가족단위의 외식문화 덕에 대형 자장면 집이 많이 생겼는데도 성업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들어선 신도시의 중국음식점들은 한결같이 크며 깨끗한 내·외장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식기와 의자, 어린이 세트메뉴 등도 선보인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성남=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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