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도시락’파문 대안은 뭔가… ‘2500원’ 재료비로만 쓰자

  • 입력 2005년 1월 18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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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도시락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개선책 마련에 나섰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 방학 중의 식사 제공이라는 특성 때문에 뾰족한 개선책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게다가 도시락 공급업체들이 잇따라 급식 대행을 포기해 오히려 급식 환경이 나빠지는 지역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끼니당 2500원이냐 4000원이냐’ ‘도시락이냐 식권이냐’식으로 한 가지 대안만을 선택해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혼란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또 앞으로 방학 때마다 부실도시락 파문이 재발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지역 특성에 따른 다양한 대책 마련과 철저한 준비, 그리고 이를 위한 유연한 예산 운영만이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예산 책정의 앞뒤가 바뀌어야=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끼니당 2500원은 전체 예산을 먼저 정한 뒤 이를 급식 대상자 수로 나눠 결정한 금액이다.

즉 아동에게 필요한 영양을 기준으로 예산을 짠 것이 아니라 돈의 한도부터 정해 놓고 1인당 비용을 계산한 것. 전체 예산 372억 원은 중앙정부가 내놓은 예비비 및 복권기금 171억 원과 지방비 201억 원을 합친 액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끼에 들어가야 할 적정한 재료 비용’을 기준으로 예산이 책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재의 예산으로도 번듯한 식단을 짜는 모범 지방자치단체들의 공통점은 2500원 대부분이 재료값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문제가 된 제주 서귀포시의 부실도시락은 도시락 용기 300원, 조리사 인건비 350원, 배달료 450원을 제하고 나면 실제 내용물은 1400원 수준에서 만들어졌다. 부대비용이 커지면서 막상 도시락 내용물은 열량이 400∼500Cal로 초등학생이 섭취해야 하는 한 끼의 열량 700Cal 안팎에 크게 못 미치는 불균형 식단이 돼 버린 것.

따라서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4000원 인상안도 그 돈이 한 끼니 ‘재료비용’으로 규정되지 않는 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예산도 먼저 한도를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재료비에 배달비 등 추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이빈파(李빈琶·44)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순수 재료비에 대한 규정 없이 전체 비용만 4000원으로 올리는 식의 대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편하게’ 먹게 해야=최근 복지부 홈페이지에는 ‘학생 지정 식당을 마련하자’ ‘봉사할 가정을 모아 집에서 먹게 하자’는 등의 여러 제안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에 대한 결식어린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 어린이는 복지부 홈페이지에 ‘지정식당 단체급식은 어린이의 정서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친구들이 볼까 봐 걱정도 되고 구걸하는 것 같아 소화가 안 된다. 상품권이 제일 좋고 안 되면 그냥 도시락으로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상품권은 안 된다’ ‘도시락은 부실 위험이 있어 반드시 특정 장소에 앉혀 놓고 먹여야 한다’는 식의, 중앙정부가 책상에 앉아서 만드는 일률적 대책은 실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상품권 도시락 지역아동센터 무료단체급식 등 가능한 한 다양한 대안을 지역 특성에 맞게, 그리고 어린이들의 바람을 최대한 반영해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충북 청주시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먼저 벌이고 90% 이상의 찬성을 얻어 ‘식료품 및 부식 구입과 지정식당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을 발급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김성이(金聖二) 교수는 “획일적으로 하나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우수 지자체 살펴보니▼

결식아동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를 적극 활용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협조가 원활한 곳이다.

충남 부여군의 경우 대한적십자사 소속 30명의 자원봉사자가 적십자사 내 빈 공간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배달까지 해 준다. 덕분에 지원비 2500원 대부분이 도시락 내용물로 쓰인다.

제주 북제주군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도시락 배달사업단’을 별도로 구성해 배달에 따른 최소비용을 제외한 2350원가량을 도시락 실제 제조 비용으로 투입한다.

보건복지부도 이를 감안해 최근 일선 지자체에 “민간단체들과 협력하는 ‘급식지원협력체’를 구축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단순한 지침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배달을 맡은 자원봉사자에게 연료비를 지원하고 각종 보험에 가입시켜 주는 것 등은 당장이라도 시행해야 할 사안.

지자체별로 한두 명의 공무원이 전담하고 있는 인력 구조도 개선돼야 한다. 경북도의 경우 결식학생 지원 업무를 여성정책과 소속 직원 한 명이 다른 업무와 함께 맡고 있는 등 대부분 지자체의 행정인력이 절대 부족해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이혜경(李惠炅) 교수는 “실질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행정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복지정책이 양산돼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정책 집행에 필요한 필수 인력 등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부여=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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