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대학을 자유롭게 하라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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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빠른 은퇴’ ‘긴 노후’를 맞게 된 개인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각국은 변화의 빠른 속도에 당혹해하면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고 국가경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 내부에선 좁은 국토와 척박한 자원, 인구 5000만 명이 안 되는 소국(小國)의 현실을 인정하고 ‘작지만 강한 나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틈새에서 그에 맞게 생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가 내놓은 ‘오랑캐 정신을 되찾자’는 구호도 조상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실용주의를 강조한 점에서 이와 일맥상통한 것이다. 이런 미래 전략의 연장선에서 한시라도 바삐 서둘러야 할 일이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한국이 먹고살려면▼

지난해 유난히 시끄러웠던 교육 분야에서 핵심 현안들은 모두 입시와 관련된 일이었다. 고교등급제 파문, 평준화 논쟁, 새 대입제도, 수능시험 부정까지. 각자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결국 내가 먼저 ‘좋은 대학’에 가야 된다는 ‘아우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학을 ‘사회적 지위’나 ‘돈’을 재생산하는 세속적 수단으로 보고 저마다 입시 관문을 통과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지, 대학의 수준을 높이고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는 일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 놓고 나면 교육문제는 벌써 남의 얘기가 되고 만다.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국가에서 극과 극이 교차하는 ‘풍요 속의 빈곤’이다.

해마다 외국기관에서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상위를 휩쓰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선진국들이고 세계 경제에서 급부상하는 국가들이다. 한국이야말로 지식 창출과 인재 육성의 터전인 대학을 키우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대학 육성은 결국 돈의 문제다. 르네상스를 일으킨 메디치 가문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피사 대학을 단숨에 유럽 최고의 대학으로 만든 것이다. 마키아벨리도 극찬한 피사 대학의 육성담은 메디치 가문이 나서 이탈리아 당대 석학들을 최고의 대우로 모셔온 것으로 끝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세계 대학 평가에서 부동의 1위인 미국 하버드대의 발전기금은 우리 돈으로 20조 원에 이른다. 그 액수에 100분의 1도 못 미치는 우리 대학들을 무조건 ‘열등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서 가장 큰 모순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중성이다.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며 장학금 병역혜택 등 사실상 ‘다걸기(올인)’ 정책을 펴면서도 대학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되는 대학의 자율성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세계적 대학 키우는 元年으로▼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는 사뭇 달라졌다. 대학 서열화보다는 의대와 같이 ‘돈 되는 학과’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인재편중 현상이 큰 문제다. 이념편향 세력들이 내세우는 대학 서열화의 해악(害惡)논리는 1980년대식 낡은 관점에 불과하다. 이처럼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정부의 정책은 사립학교법 개정안, 3불(不)원칙의 법제화처럼 과거 권위주의 시대보다도 대학을 더 옥죄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의 거품이 걷히면서 대학들은 위기감에 빠져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이 세계적인 대학 육성을 위한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이제 대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과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올해가 세계 톱클래스 대학을 키우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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