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에게 듣는다

  • 입력 2005년 1월 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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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기자와 만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경제조류재단 이사장은 ‘기술의 진보가 실업자를 양산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신용카드 남발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미국식 모델의 파탄을 예측했다.-워싱턴=김승련 특파원
본보 기자와 만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경제조류재단 이사장은 ‘기술의 진보가 실업자를 양산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신용카드 남발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미국식 모델의 파탄을 예측했다.-워싱턴=김승련 특파원
《실업 증가, 환경 파괴, 부의 편중…. 올해도 인류의 숙제는 계속된다. 난제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본보는 새해를 맞아 ‘노동의 종말’, ‘수소경제’ 등의 저작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해 온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경제조류재단(FET) 이사장을 만나 생각을 들어봤다.》

―1995년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기술의 진보가 실업자를 양산한다’고 한 주장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그 믿음에 변함이 없나.

“오히려 더 확신하게 됐다. 95년 이후 전 세계의 실업자는 8억 명에서 10억 명으로 늘었다. 외국인투자 증가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중국도 최근 7년간 제조업 근로자 수는 15% 줄었다. 정보기술(IT)이 공장을 자동화한 탓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아무리 싸도 공장 자동화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노예제 폐지는 자유주의와 시민정신의 성숙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예 1명의 유지비를 증기기계에 투입할 때 산출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능했다. 생산성의 변화는 노동시장의 지각변동을 부른다.”

―기술진보로 단순 제조업 종사자는 줄었지만 컴퓨터,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의 일자리가 늘지 않았나.

“사무직 일자리가 IT 기술로 잠식당했다. 요즘에는 전화안내원의 육성 듣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고도의 지적이고 기술적인 훈련을 받은 소수만이 일자리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재교육을 통해 전직(轉職)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코미디다.”

―지금 상태로 가면 파국을 맞는다는 뜻인가.

“인류는 문명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기술발전으로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문명의 승리를 기대하는가. 아니다. 기술진보를 그대로 방치하면 인류에게 암흑기가 올 수 있다. 100년 뒤 일자리가 더 없어지면 인간은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일까.”

―해법은 있을까.

“생산성 향상에 맞춰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또 불가피한 실업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제3섹터)의 일자리를 늘리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

―무한경쟁 시대에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데….

“달리 대안이 없다. 내가 조언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이 제도를 시행했다. 기업의 불만은 정부가 법인세를 낮춰주면 해결된다. 실업자가 줄면서 실업수당 지출이 줄고, 개인소득세 및 소비세를 더 걷으면 세수 부족도 해결된다.”

―부족한 일자리를 비영리단체 및 시민단체가 채워줄 수 있겠나.

“95년 이후 유럽에서 새 일자리의 40%가 시민사회 분야에서 나왔다. 공공병원, 대학, 탁아시설 등 정부기구 및 기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프랑스와 북유럽 모델은 실패한 것 아닌가. 프랑스 노조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다시 늘리려 하고, 북유럽 국가도 사회보장제를 축소하는 추세인데….

“토론의 여지가 있다. 프랑스 모델은 절반의 성공(mixed success)이었다.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면서 일자리 28만 개가 생겼지만, 정책이 유연하지 못했다. 하지만 90년대 미국의 신경제를 성공모델로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 당시 미국의 장기호황은 아이들의 장래를 미리 끌어다 쓴 무책임한 처사였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신용카드 회사가 새로운 기법으로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90년 미국의 저축률은 2%였지만 지금은 0%다. 미국은 2004년 기록적인 파산자 급증, 이에 따른 이혼 증가를 경험했다. 이것이 건강한 경제인가. 결국 이런 공백을 재정적자, 무역적자로 메우면서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10% 이상의 만성적 실업난을 겪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의도적으로 축소됐다. 시카고대 연구 결과 실질실업률은 4, 5%가 아닌 9%로 유럽과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은 실업수당 지급기간이 유럽(2년)보다 짧다. 미국 실업자는 수당이 끊기는 순간 곧바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또 남성 경제활동인구의 2%인 200만 명이 수감생활 때문에 실업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유럽 국민이 신용카드를 마구 써서 저축률(13%)이 미국처럼 0%가 된다면 당장 실업률을 미국처럼 떨어뜨릴 수 있다. 한국이 무자비한 미국식 경제구조를 따른다면 부채 및 파산 증가, 원화 약화, 아이들의 미래를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유럽모델을 따르길 간곡히 권한다.”

―석유에너지 대신 수소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에너지 전문가로서 이라크전쟁을 평가해 달라.

“석유에 매달리는 한 미국과 중동 원리주의자들의 석유정치, 석유전쟁은 계속된다. 좀 솔직해지자. 이라크에 석유가 없다면, 미군 15만 명이 왜 거길 가나. 비료 의약품 플라스틱 모두 석유에 의존하지만 2040년이면 고갈된다. 대비해야 한다.”

―수소 에너지경제가 상업적으로 가능하겠나.

“수소경제 추진은 인류의 의무다. 나는 인류의 3대 위기로 중동 테러리즘, 지구온난화, 제3세계 부채를 꼽는다. 모두 석유 때문에 생겼다. 제3세계가 버는 1달러 가운데 83센트가 부채 원리금 상환에 쓰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유럽은 수소체제로 간다.”

―수소경제 체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석유는 산유국의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독점형 에너지지만, 수소는 민주적 에너지다. 수소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기술진보로 수소에너지가 본 궤도에 오르면 수소에너지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2005년 통신기술의 핵심은 이동통신과 인터넷이지만 미래의 통신은 의사소통을 넘어서게 된다. 기폭제는 수소축전지 개발이다. 천연 무공해 에너지인 수소를 태워서 발전하고, 이를 축전지에 담는 기술이 개발되면, 지구상의 자동차 8억 대는 모두 작은 발전소가 된다. 미래에는 낮에 운전하고 밤에 잉여에너지를 P2P(peer to peer) 형식으로 판매하는 세상이 온다. 이 구도에선 산유국, 석유 메이저의 독점력은 현저히 줄어든다. 한국처럼 인터넷, 이동통신 기술이 앞서가는 나라가 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면 엄청난 기회가 올 것이다.”

만난 사람=김승련 워싱턴특파원srkim@donga.com

▼제러미 리프킨 약력▼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생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졸업

△터프츠대 법외교학대학원 졸업

△1971∼1976년 국민200년위원회 조직

△1977년 경제조류재단 설립

△주요 저서:‘신생질서’ ‘이단선언’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수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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