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대입]학생부로 ‘공룡 私교육’ 막을수 있을까

  • 입력 2004년 8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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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완전 9등급제로 전환돼 변별력이 떨어지는 대신 학교생활기록부와 심층면접 논술 등 대학별 고사가 당락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 대학입시의 무게중심축이 옮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책의 배경에는 통합교과 방식의 수능이 너무 어려워 학교 교육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1점이라도 더 따려면 학원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그냥 다니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교육의 득세와 공교육 황폐화가 도를 넘은 것도 사실이다.

교육부 관계자가 “새 대입제도는 종전의 틀은 유지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다”고 말할 만큼 교육부는 이 제도가 교육현장에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능은 평가방식 개선과 함께 고교 2, 3학년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하고 출제과정에 교사 참여를 늘려 고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반영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학생부에 평어(評語) 대신 원점수 표기제를 도입하면 성적 부풀리기가 원천 봉쇄되고 9등급제 적용으로 석차 경쟁도 줄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전망이다. 이에 따른 재수생 감소 효과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교육부의 취지와는 달리 이번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첫째, 수능이 변별력을 잃어 평가도구로서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지난 입시에서 수험생 64만명 중 상위 4%에 해당하는 1등급은 2만5000여명. 주요 10개 대학의 모집정원이 2만6000여명이나 된다. 통계상으로는 1등급만 받으면 서울대나 다른 주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둘째, 수능의 세부 점수를 주지 않고 등급만 제공할 경우 한 등급 차이의 실제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수험생이 등급만 알고 몇 점을 받았는지 모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셋째, 평준화 체제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부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도 일부 대학은 서류심사에서 고교별 역대 진학 실적 등을 토대로 고교등급제를 비밀리에 적용하고 있다.

한편 이번 교육부의 방안은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관한 논란도 낳고 있다. 대학별 심층면접이나 논술고사가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대학에 선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도 교육부가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학력을 평가하는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대학은 ‘학업적성시험’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변칙적인 본고사를 치르고 있다. 새로운 대입제도 아래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학급당 학생수가 40명에 가까운 교육 현실과 교사들이 각종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교사들이 학생부 관리를 충실히 해줄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아무튼 이제 ‘공교육 정상화’라는 공은 이번 개선안을 계기로 일선 고교와 대학에 넘어갔다. 남은 과제는 고교와 대학측이 어떻게 이를 잘 운용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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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어떻게 달라지나▼

2008학년도 대입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가 9등급으로만 제공되는 등 지금과 상당히 다른 체제로 운영된다.

▽수능=수험생 개개인이 받는 수능 성적표에는 표준점수 및 백분위점수 등이 사라지고 영역별 등급(1∼9등급)만 표기된다. 등급별 비율은 △1등급 상위 4% 이내 △2등급 상위 7% 이내 △3등급 상위 12% 이내 등으로 현재와 같다.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여러 과목의 내용을 한 문제에 담는 ‘통합교과형’ 출제가 아니라 과목별 교과과정 내에서만 출제한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단편적 지식을 묻는 종전 학력고사형 출제를 피하고 사고력 측정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출제범위는 고교 2, 3학년의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 한정되며 시험 영역 및 과목은 2005학년도 수능 체제를 유지하되 현재 51과목인 선택과목 수를 줄이는 방안이 검토된다.

출제위원들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합숙을 하며 문제를 내던 ‘폐쇄형 출제방식’도 ‘개방형 문제은행식’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부터 문항공모제 등을 통해 탐구 등 일부 영역에 문제은행식 출제를 시범 실시한 뒤 2010학년도부터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학생부=현재의 ‘수 우 미 양 가’ 방식에서 벗어나 수험생의 점수와 과목별 평균, 표준편차를 함께 표기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과목 성적이 ‘95/70(10)’으로 표시됐다면 이 학생은 전체평균이 70점이고 표준편차가 10인 상황에서 95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목별 평균과 표준편차가 제공되면 집단 내에서 수험생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성적 부풀리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와 함께 과목별 석차(석차/재적인원)를 ‘석차등급(이수자 수)’으로 바꾸고 수능과 마찬가지로 9등급으로 표기된 석차 등급도 제공해 대학별로 선택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행 성적표에 ‘4(15)/532’라고 씌어 있다면 이는 532명 가운데 4등이고 같은 4등이 15명이라는 뜻이지만 앞으로는 ‘1(532)’로 표기해 532명 가운데 1등급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등급별 비율은 수능 등급과 같다.

비교과영역에는 특별활동과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독서활동 등 학생의 다양한 활동과 특성을 충실하게 기록해 교과 및 비교과영역이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2006년까지 교과별 독서 매뉴얼을 개발해 시범 운영한 뒤 2007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독서활동을 교사가 확인해 학생부에 넣도록 할 예정이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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