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특종 사진기자 '비극의 그날' 떠나다

  • 입력 2003년 10월 9일 2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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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폭발물이 터지기 직전 고 최금영 기자가 찍은 한국 대표단. 촬영 필름에 피가 배여 인화된 사진도 흐릿하게 얼룩져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년 전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폭발물이 터지기 직전 고 최금영 기자가 찍은 한국 대표단. 촬영 필름에 피가 배여 인화된 사진도 흐릿하게 얼룩져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꼭 20년 전인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 양곤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 당시 폭발물이 터지기 직전 한국 정부 요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찍었던 최금영(崔琴煐) 전 연합뉴스 사진담당국장이 9일 향년 67세로 타계했다. 비극 20주기가 되는 바로 그날 홀연 고통의 세월을 마감한 것이다.

이 참사는 아웅산 묘소를 방문할 예정이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북한의 테러로 발생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한 사람이었던 그가 남긴 이 사진은 우리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기록한 특종사진이었다.

서석준(徐錫俊) 당시 부총리 등 정부 요인과 취재기자 등 17명이 숨진 이 역사적 장면을 고인이 놓치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대통령 동행 기자 자격으로 현장에 참석했던 그는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카메라를 테스트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피로 범벅이 된 채 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카메라에는 역사적 순간이 담긴 흑백 필름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이 사진으로 고인은 그해 한국기자협회 특종상과 한국신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고인은 사건 당시 날아온 파편이 심장 근처에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고인은 당시 함께 취재를 했던 동아일보 이중현(李重鉉) 기자를 먼저 떠나보낸 데 대해 평생 동안 가슴 아파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이 기자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그는 “차라리 너와 나의 자리가 바뀌었더라면” 하고 괴로워했다.

생전 고인이 남긴 일화에 따르면 이 기자는 이순자(李順子) 여사를 동행 취재할 예정이었으나 “동아일보를 대표해서 왔으니 본 행사를 찍겠다”며 사건 현장에 왔다고 한다. 폭발물이 터지기 직전 이 기자는 키가 큰 고인에게 “선배, 사진 좀 찍게 앉아주세요”라고 말했고, 이 말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됐다. 자리에 앉았던 고인은 살아남았고 뒤에 서 있던 이 기자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부서진 카메라만 돌아왔다.

광주 출신인 고인은 1959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후 서울신문, 동아일보를 거쳐 연합뉴스 사진부장과 사진담당 국장을 역임하고 93년 정년퇴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옥순(文玉順)씨와 외아들 동호(桐豪·자영업), 큰딸 안희(安希·학원원장), 둘째딸 욱희(旭希·학원원장)씨가 있다. 빈소는 일산백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31-919-0299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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