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달러 폭로요청說'…청와대 '기획폭로' 사실인가

  • 입력 2003년 3월 29일 0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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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달러 수수의혹사건’의 제보자로 알려졌던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28일 자신의 제보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청와대측이 언론 폭로까지 무리하게 종용했다고 폭로한 것은 이 사건의 근본 틀을 뒤흔드는 발언이다.

김 전 부시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김희완발(發) 소문’이 와전된 해프닝이 아니라, 청와대가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의 입을 빌려 기획 폭로를 한 것임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김 전 부시장이 공개한 대로 “김현섭(金賢燮) 전 비서관이 먼저 (20만달러 제공설을) 물어왔다”는 증언은 앞으로 정치권의 공방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는 특히 “김 전 비서관에게 (최규선으로부터 이회창 총재 방미를 돕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을 뿐, 설 의원이 폭로한 20만달러라는 숫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해 소스 자체가 전혀 ‘다른 곳’일 가능성을 암시했다. 김 전 비서관은 8일 도미해 현재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김 전 부시장은 “설 의원의 4월19일자 폭로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는 생생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청와대가 어디선가 이야기를 들은 뒤 나를 ‘대리 소스(source·취재원)’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설 의원은 28일 이 같은 김 전 부시장의 주장을 들은 뒤 “김 전 부시장은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다”고 잘라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이 설 의원의 기자회견에 앞서 신문기자를 소개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김 전 부시장은 “설 의원의 기자회견 이전 시점에 서울시내 커피숍에서 만난 김 전 비서관이 (휴대전화를 건네며) 기다리고 있는 기자가 있으니, 좀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 김 전 부시장의 설명. 그는 기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쪽(청와대)과 잘 통하는 신문”이라고만 답했다.

설 의원이 기자회견에 나서게 된 과정도 의문투성이이다.

우선 대통령의 가신 출신인 현역 의원이 청와대 비서관이 보내온 팩스 내용만을 믿고 별다른 확인 작업도 없이 야당 총재를 겨냥해 폭로할 수 있느냐는 점이 그렇다. 사실 관계를 입증하지 못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명예훼손 혐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설 의원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말을 어떻게 안 믿느냐”며 “김 전 비서관이 팩스를 보낸 바로 그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 확인작업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의 출국날짜가 같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사실이 같았다”는 확인내용이 너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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