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도 수사도 연기…'대선의 계절' 정치권 눈치보기病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9시 13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원과 검찰이 정치인 관련 재판과 수사를 대부분 연기하거나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

특히 일부 사건의 경우 법원과 검찰이 스스로 재판을 연기하거나 수사를 중지해 ‘정치권 눈치 보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이흥복·李興福 부장판사)는 10일 예정됐던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와 민주당 김영배(金令培·서울 양천을)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내년 1월 14일로 연기했다.

재판부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에 대한 선고를 동시에 하기 위해 한나라당 김윤식(金允式·경기 용인을) 의원의 선고 날짜에 맞춰 내년 1월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모두 선고 연기를 신청하지 않은 데다 김윤환 대표의 경우 선거법과는 상관없는 뇌물 등의 혐의여서 대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정이라는 게 재야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미 심리가 끝나 재판을 끌 이유가 없는데도 선고를 늦춘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

특히 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33억5000만원을 선고받아 항소심에서 법정구속이 예상됐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영배 의원 역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이 확실시됐던 만큼 이들의 선고를 늦춘 것은 ‘봐주기’라는 지적이 많다.

법원은 또 99년 재판에 회부된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 전 의원을 비롯해 지난해 기소된 강삼재(姜三載) 정형근(鄭亨根) 의원 등의 재판 역시 아직까지 1심조차 끝내지 않고 있다.

검찰의 ‘대선 의식하기’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검찰은 ‘산업은행 4900억원 대출 압력 의혹 사건’과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 ‘김대업(金大業)씨 수사관 자격 사칭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에 대해 관련 기록 검토나 피의자 잠적 등을 이유로 수사를 사실상 대선 이후로 미뤄놓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관련 정치인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검 간부는 “선거를 앞두고 수사할 경우 수사 자체가 정치적 중립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해 대선을 앞둔 수사 중단이 검찰 자체 판단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정치권 인사에 대해서는 일반 사건과 똑같은 수사와 소송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 자체가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재일(全載日) 간사는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이라는 이유로 일반인과 다른 사법적 잣대가 적용되는 것은 문제”라며 “법원과 검찰이 정치를 의식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수사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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