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미국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 저자-주부 김라미씨 대담

  • 입력 2002년 11월 5일 16시 41분


린다 수 박(왼쪽)이 주부 김라미씨와 ‘사금파리 한 조각’을 보며 얘기하고 있다./김동주기자
린다 수 박(왼쪽)이 주부 김라미씨와 ‘사금파리 한 조각’을 보며 얘기하고 있다./김동주기자
《올해 ‘사금파리 한 조각(A Single Shard)’으로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 수상자 린다 수 박(한국명 박명진·42). 최초의 동양인 수상자인 그가 아동문학가가 된 뒤 처음으로 어머니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동갑내기 주부 김라미씨(서울 양천구 목동)가 그를 만나 아동문학가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삶에 대해 조목조목 물었다. 우리말을 못하는 박씨를 위해 김씨는 작은딸(9·초교 3학년)의 궁금증을 꼬박꼬박 영어로 메모해 전달했다.》

김라미〓12세 때 한국을 다녀간 뒤 성인이 돼 첫 방문인데 감회가 어떻습니까?

린다 수 박〓너무너무 오고 싶었습니다. 일본에 잠시 기착했는데 수십년 수만리 달려 온 어머니 나라가 지척이란 생각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김〓1950년대 부모님이 유학생으로 미국에 가셨는데 그동안 한국인과의 교류는 있었습니까?

박〓당시엔 한국인이 드물었고 우리집은 시카고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박씨 부모는 집에서 영어만 쓰도록 했다. 박씨는 네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홉살 때는 어린이 잡지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다. 원고료로 1달러가 표시된 증서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그 증서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놓았다.)

중국계 미국인이 생각한 주인공 목이(왼쪽)와 우리나라 화가가 본 목이. 김세현씨는 목이를 12세로 그렸으나 미국인 것은 좀더 나이들어 보인다./사진제공 서울문화사

김〓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박〓아버지는 열살 무렵까지 저를 데리고 2주일에 한번은 꼭 공립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을 골라주었습니다.

김〓‘사금파리 한 조각’은 몇살짜리가 읽으면 좋은가요?

박〓미국에서는 타깃층을 9∼13세로 잡고 있지만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작품을 읽어보면 12세기 고려시대가 눈앞에 있는 듯 합니다. 작품의 자료는 어디서 구했나요?

박〓영문자료 밖에 읽을 수 없었지요. 30∼40권 읽었습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부분은 부모님에게 물었는데 잘못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원문에는 ‘당근’이 나오지만 한국어로 발간할 땐 12세기 고려에 당근이 없었다고 하기에 ‘순무’로 바꿨습니다.

김〓‘사금파리 한 조각’도 그렇지만 ‘널뛰는 소녀(Seesaw Girl)’ ‘연싸움(The Kite Fighters)’ ‘내 이름이 게오꼬였을 때(When My Name was Keoke)’ 역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박〓런던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일랜드인인데 아이들이 아일랜드 문화를 배울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문화에 대해 들려줄 것이 많지 않았고 그때부터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박씨는 AP통신 기자인 남편 벤 도빈과의 사이에 아들 숀(17)과 딸 애나(13)를 두고 있다.)

김〓등장인물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습니까?

박〓주인공 ‘목이’는 숀과 친정아버지에게서 성격을 많이 따왔습니다. ‘목이’는 버섯이름인데 처량한 신세를 드러내면서도 재미있게 들리지요? 어렸을 때 기억도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어렸을 때는 착한 애 나쁜 애가 명확했지요. 그러나 자라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는 과정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김〓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박〓‘독서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아이들도 TV나 컴퓨터에 빠져 많이 읽지 않습니다. 책이 흥미롭고 재미있으니 읽어보라는 것이 메시지입니다. 저는 단지 이야기만 썼을 뿐 독자들은 나이와 처지에 따라 어른에 대한 공경, 인생의 험난함, 예술을 향한 열정을 읽지요.

김〓미국책엔 그림이 없는데….

박〓열살 정도 되면 글을 읽고 나름대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동화책엔 그림을 넣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출판사측에서 원하기에 동의했는데 그림이 무척 아름답군요.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 등 9개국에서 이 책의 출판권을 사 갔는데 그들의 정서에 따라야겠지요.

김〓한국에선 엄마들이 사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박〓한가지 재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숀은 체스선수이고 수학을 잘합니다. 애니는 노래를 잘 부르고 창의적인 예술에 재능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나 일본인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은 사람의 일생 70∼80년 중 겨우 10년 뿐이지요. 그 시절을 즐기게 해주고 싶습니다.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마음껏 하도록.

(박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런던대에서 영국 근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엄마로서, 주부로서, 작가로서 힘들텐데….

박〓친정어머니가 오면 집이 너무 더럽다고 나무랍니다. 그러나 저는 청소와 글쓰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글쓰기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무슨 책을 많이 읽습니까?

김〓큰딸(16·고교 1년)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작은딸은 재미있는 것을 모두 좋아합니다.‘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책부터 ‘나니아나라 이야기’같은 판타지까지 모든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지요.

박〓미국에선 요즘 마더-도터 북클럽이 유행이에요. 6∼10세의 딸과 엄마들이 학교나 동네가 매개체가 돼 주 1회 한 집에 모여 책에 대해 토론합니다. 마더-보이 북클럽도 있지만 역시 마더-도터 북클럽이 활발합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 린다 수 박의 독서 교육법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라〓어려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보여주었다. 잠잘 때 들려주는 베드타임 스토리로 애니는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잘자요 달님’, ‘아기토끼 버니’를 좋아했다. 동화책을 들려주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교육적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상상력이 발휘될 기회가 없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머리 속에 각자 다른 그림을 그린다.

▽재미있는 것을 읽혀라〓만화책이라도 무조건 읽힌다. 아이에게 책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처음엔 만화책을 읽지만 차츰 책에도 관심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글을 알더라도 읽어주어라〓숀이 열다섯살 때도 ‘해리포터’같은 책을 읽어주었다. 미국에서도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일곱살 무렵부터는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을 알려면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다 웃으면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공감’은 아이와의 대화의 시작이다.

▽가족이 함께 읽어라〓TV건 게임이건 혼자 하기 때문에 가족이 서로 고립된다. 시도 함께 읽는다. 한쪽 페이지는 엄마가 읽고 다른 페이지는 아이가 읽는다. 어느 날 늦게 퇴근한 남편이 “나도 없이 읽었느냐”고 푸념한 적도 있다.

▽당장 TV를 끄고 부모가 책읽는 모습을 보인다〓역시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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