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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1월 2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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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취재팀이 전국의 주요 병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에이즈는 스님 목사 방송PD 의사 간호사 등 거의 직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보건원 한 관계자는 “에이즈 감염자 분포는 전 직종에 걸쳐 고르다”고 말했으나 감염자의 직업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에이즈 환자 증가 추세가 ‘폭발 직전’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올해 9월말 현재 국내 에이즈 감염자는 1515명으로 1년 전에 비해 43%가 늘었다.
국립보건원측은 “국내 에이즈 환자 증가 곡선을 분석한 결과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다 98∼99년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그래프 참조)
전문가들은 국내 에이즈 증가세가 현재 환자 수가 75만여명인 태국의 전철을 따를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자칫 국내에서도 에이즈 예방 대책을 게을리 하면 2010년경 10만명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언이다. 태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태국의 에이즈 감염자가 85년 1명, 90년 107명, 91년 453명, 92년 1463명, 93년 5713명, 99년말 12만8000명으로 급상승했다.
에이즈 확산에 따라 ‘에이즈 고아’ ‘황혼 부부 감염’ ‘수직 감염’ 등 사회문제도 불거질 조짐이다.
유엔 에이즈기구(UNAIDS)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인터넷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에이즈 감염자 수는 99년말 현재 3800명, 이 중 에이즈로 부모 또는 어머니가 숨진 ‘에이즈 고아’는 85명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계산 방식이 틀렸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또 올 들어 새로 감염 사실이 확인된 사람 가운데 60세 이상은 21명으로 지난해 10명에 비해 갑절이상 증가했다. 특히 이들 중 여성 4명은 남편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환자 가운데에는 70대 남성도 있다.
최근 감염자로 밝혀진 김모씨(60·여)는 평생 남편(65)을 뒷바라지하면서 자녀를 각각 의사와 간호사로 키웠지만 황혼에 에이즈에 걸렸다. 김씨는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지만 ‘남편의 선물’은 어이없게 에이즈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9월까지 10대 감염자가 6명 새로 발견돼 ‘10대 에이즈’도 사회 문제화할 공산이 크다. 이전 이 연령층 감염자는 주로 수혈 또는 혈액제제를 통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됐다.
감염 경로도 다양화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50대 남성은 러시아 윤락녀와 성 접촉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즈 안전지대’로 잘못 알려진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에는 또 지난해까지 없던 마약 주사 바늘에 의한 감염자가 최소 3명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의대 내과 오명돈(吳明燉) 교수는 “국민 모두 에이즈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건전한 성생활이 우선이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콘돔을 사용해 에이즈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남의 일로만 알았는데 95년 감염사실을 알고 억지로 연인을 떠나보냈다. 한때 실수가 이런 결과를 빚을 줄은 몰랐다. 그때 콘돔이라도 사용했더라면….”
에이즈에 감염된 김모씨(34)는 한없는 외로움 속에 이렇게 후회했다.

<이성주·차지완기자>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