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추적 남용 논란]"내 계좌를 샅샅이 뒤져본다면…"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47분


19일 국회에서 검찰 등 수사기관의 계좌추적에 대한 적절성 여부가 제기되면서 계좌추적문제가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4조 1항은 계좌의 명의인 본인의 서면요구나 동의에 의해서만 계좌추적이나 금융정보 제공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개인의 금융거래는 헌법 17조가 규정한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라는 기본권에 속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기본권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정한 ‘예외’에 의해 제한될 수 있으며 실명제법은 같은 조항에 6가지의 예외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논란의 쟁점〓계좌추적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타기관의 견제와 심사를 받지 않는 계좌추적권은 남용될 소지가 크지 않느냐는 것으로 모아진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위해 법원에 압수영장을 청구하므로 법원의 견제와 심사를 받는 반면 국세청 등 다른 기관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계좌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감원 등이 관련법률에 근거해 영장 없는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 해도 그 허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악용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점 때문에 법률에 실효성 있는 통제장치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에 실시된 계좌추적 10만4000여건 중 91%가 ‘무영장(無令狀)’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면서 우려는 더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세청과 금감원 등은 이미 법이 계좌추적의 요건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 권한 남용의 우려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찰이 악용하려고 할 경우 파견직원을 통해 영장 없는 계좌추적을 벌일 개연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1999, 2000년 월평균 계좌추적 건수 비교

연도/계좌추적 내용금융정보제공 요구 건수(금감원 국세청 등의 영장 없는 조사)계좌추적 위한 영장청구 건수(검찰)
1999년1만6092371
2000년(11월 이전까지)1만7445344

▽금감원과 국세청의 계좌추적〓실명제법 4조 1항 4호는 ‘금융감독원장은 감독 검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금융기관에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98년까지는 이 조항 외에 다른 단서가 없어 금감원은 자의적으로 계좌추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98년 12월 법이 개정돼 금융사고가 발생하거나 내부자거래 등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을 경우, 실명제법을 위반한 경우 등 5가지의 제한규정이 삽입됐다.

금융감독원장은 계좌추적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금융기관에 ‘정보제공요구서’를 서면으로 요구하고 대상자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과 용도, 해당 금융기관의 점포별로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타기관의 심사는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금감원 김대평 검사총괄팀장은 “다른 기관의 감독이 없더라도 권한이 남용될 우려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금감원은 금융기관들을 감독하고 있고 금융사고 등 조사가 필요한 경우 즉각적으로 조사에 나서 증거를 모으고 관련자의 신병을 확보해야 하므로 법원 등 타기관의 심사를 받게 되면 조사에 큰 지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의 계좌 추적 건수는 98년에 5000건, 99년에 9000건, 지난해 상반기에 3000여건이었다. 99년에 추적건수가 많았던 이유는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책임 규명 등 현안이 많았기 때문에 검사의 수요가 늘었다는 게 이성남 검사총괄실장의 설명이다.

▽국세청의 계좌추적〓실명제법 4조1항 2호의 예외규정에 따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행해진 계좌추적 10만4000여건 중 3만4000여건이 국세청에 의해 실시된 것으로 가장 큰 규모.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하다보면 매출누락 혐의가 나타나는 등 구체적 탈루혐의가 잡히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 해당자의 거래은행 특정지점에 공문을 보내 계좌추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상속 증여재산 확인, 체납자의 재산조회 등에도 계좌추적권이 발동된다.

▽검찰의 계좌추적〓19일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의원이 “검찰이 금감원 직원들을 파견 받아 영장 없이 계좌추적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검찰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금감원 파견직원들은 계좌추적의 전문가로서 추적과정과 분석과정을 도와줄 뿐이며 검찰에 파견된 이상 영장에 의해 계좌추적 작업을 돕고 있다”며 “검사가 파견직원에게 영장에 의하지 않은 계좌추적을 요구하더라도 금감원장의 요구서가 없이는 불가능하고 요구 자체가 위법이어서 이의원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하임숙·이훈·신석호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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