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선거 거북재판…솜방망이 처벌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20분


지난해 4·13 총선 때 선거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현직 의원과 그들의 당선 효력에 영향을 주는 선거사무장 등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선거 후 1년이 다 됐는데도 1심 판결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심 판결이 난 의원들 중 4분의 3은 의원직 유지가 가능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선거사범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정치풍토를 고치겠다고 선언 또는 약속했던 청와대와 검찰 법원의 공언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

▽재판 상황〓16대 총선과 관련해 의원 본인(33건)과 선거사무장이나 의원부인 등 관련자(37건)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모두 70건(당선자 기준으로는 54명·일부의원 중복됨)이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33건이 5일 현재까지 1심 재판조차 끝나지 않았다.

1심 판결이 내려진 37건 가운데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의원은 한나라당 김일윤(金一潤) 김형오(金炯旿) 김호일(金浩一) 신현태(申鉉泰) 최돈웅(崔燉雄)의원과 민주당 심규섭(沈奎燮) 장영신(張英信) 이호웅(李浩雄)의원 등 8명(22%)이다.

의원 본인이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의원의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직계가족 등이 징역형(집행유예 포함) 이상이 확정되면 해당 의원의 당선이 무효로 된다.

▽재판 지연의 책임〓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은 의원들도 이제 겨우 항소심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당선무효가 확정되는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는 1심 재판에 못지 않은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270조는 선거사범의 조속처리를 위해 1심은 기소 후 6개월,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판결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법위반 당선무효 대상자 현황(2001년 4월4일 현재)
피고의원
또는 관련자
소속당 및
지역구
기소일자혐 의 내 용1심 재판결과
신현태 한나라당
수원 권선
2000.6.2기부행위. 명함배포 벌금 100만원
김형오 한나라당
부산 영도
2000.8.9허위사실 공표 벌금 300만원
김일윤 한나라당
경북 경주
2000.10.10허위사실 공표 벌금 250만원
이호웅 민주당
인천 남동을
2000.5.17총선전 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 경로당에 귤 18상자 제공 벌금 100만원
장영신 민주당
구로을
2000.5.17 선거일 투표소에서 지지 호소 벌금 100만원
심규섭 민주당
경기 안성
2000.10.11선거운동기간전 명함배포 벌금 120만원
김호일의원 부인 한나라당
마산 합포
2000.10.13선거사무원들에게 금품살포 징역1년
최돈웅의원
회계책임자
한나라당
강원 강릉
2000.8.9청년조직에 금품살포 징역10월에
집행유예2년

재판이 늦어진 데에는 검찰의 뒤늦은 기소도 한 몫을 했다. 선거 후 3개월 내에 기소된 당선자는 7명에 불과하다.

▽의원들의 재판지연 전술〓선거사범 재판 지연에 대해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원이나 증인들이 재판 출석을 기피해 재판 진행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정인봉(鄭寅鳳)의원은 15차례 공판 가운데 출석한 경우는 5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소된 의원 중 80% 이상이 재판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아 재판이 늦어지고 있다”며 “의원 개인별로 재판지연사유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재판의 지연은 재판의 거부”〓차병직(車炳直·참여연대 협동처장)변호사는 “선거사범에 대한 늑장 재판은 1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에 대한 재판과 대조적”이라며 “부정 당선자의 의원직을 반드시, 그리고 조기에 박탈해야 ‘당선 제일주의’ 선거풍토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법조인들은 “선거 전 청와대와 검찰 등의 선거사범 엄단 방침도 이제 와서 보면 야당 등 정치적 약자(弱者)에 대한 엄포용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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