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자물쇠'…김기섭 전 차장

  • 입력 2001년 1월 6일 09시 05분


1천억원이 넘는 안기부 자금을 구여권에 불법지원한 혐의로 5일 구속된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검찰 신문에 시종일관 `자물쇠'로 일관, 수사관들의 애를 먹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차장은 검찰조사에서 95년 6·27 지방선거 당시 민자당에 217억원을, 96년 4·11 총선때 신한국당에 940억원을 각각 안기부 예산에서 전용, 불법지원한 혐의에 대해 "그와 같은 자금을 내가 관리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관리했다'는 진술이외에 자금의 조성 방법과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지도부 연루 여부, 자금 지원 대상, 공모 인물 등 그 어떤 질문에도 `모른다'

와 `모두 내가 했다'는 답변만 한채 입을 굳게 닫았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말 한마디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賢哲)씨를 비롯한 구여권핵심 인물들의 개입여부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그는 철저히 함구로 일관했다는 것.

김 전 차장은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영장실질심사마저 포기했는데 이는 판사의 신문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 불거져 나올지도 모를 `불필요한' 노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검찰은 추측하고 있다.

김 전 차장의 `충성심'은 김 전 대통령 부자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 안기부 예산 불법전용 경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안기부법상 모든 예산은 운영차장의 몫이며 안기부장은 관여하지 않았다"며 당시 직속상관이던 권영해(權寧海) 전 안기부장을 보호했다.

그는 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예산 집행과정에서 하자가 있다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고 상응한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상부의 지시 여부를 묻자 "상부의 지시는 전혀 없었으며 나 혼자서 한 일"이라고 전제, "당시에는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잘못한 일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소위 `자물쇠'로 불리는 김 전차장의 이런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7년 광주민방 선정 비리사건과 98년 PCS사업자 선정 비리사건때도 그는 검찰조사때마다 청탁의 대가로 받은 금품수수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는가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덮어쓴 채 `윗선'의 연결고리를 철저히 차단,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장세동(張世東) 전 안기부장에 비견된다.

수사관계자는 "김씨의 이런 태도가 그가 현철씨의 몰락과 함께 검찰에 드나들며 터득한 침묵의 노하우인지, 한때 모셨던 상사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검찰을 상당히 힘들게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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