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념논쟁]北 생존위한 궤도수정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9시 00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북한에 관한 핵심적인 논쟁은 북한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이다. 이 물음에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변화하고 있다고 확언한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북한은 사실상 남조선 해방을 다짐한 노동당규약을 고치려 하고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남쪽과의 화해협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중국식 개혁모델이나 베트남식 개혁모델을 고려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진보적 입장의 사람들도 본질적으로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예컨대 10월 노동당 창당기념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인사들은 대체로 북한이 남조선 공산화의 도구로 썼던 통일전선전략을 버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조선 공산화보다는 자신의 생존에 몰두해 있으며 따라서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물론이고 숙적으로 여겼던 미국과의 관계개선마저 진지하게 바라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글 싣는 순서▼
① 보수·진보갈등 현주소
② 북한은 변하는가
③ 상호주의와 속도조절
④ 연합제와 연방제
⑤ 사회균열과 통일교육
⑥ 이념갈등 극복을 향하여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들은 북한이 본질적이면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남한은 대북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등을 통해, 그리고 북한의 미 일수교 지원을 통해 북한의 변화노력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평화공존 단계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은 대체로 북한이 본질적으로는 변화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북한이 보여주는 변화는 표피적이며 전술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이 남쪽으로부터 바라는 것은 오직 경제지원뿐이며 이것을 얻어내기 위해, 그래서 남한의 여론을 그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변화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앞으로 남한의 경제적 실력이 딸려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북한은 얼마든지 돌아설 것이라고까지 전망한다. 또 북한이 남쪽의 지원에 힘입어 경제력을 회복하고 마침내 강성대국으로 자리잡으면 남쪽에 대해 다시 공격적인 자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어떤 분석이 정확한가. 여기서 잠시 1970년대에 서방세계에서 펼쳐졌던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변화하고 있는가의 논쟁을 회고할 필요가 있다. 이 논쟁에서 변화의 기준으로 ①통치지도자들 사이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실질적인 토론이 있으며 반대가 허용되는가 ②실질적인 복수정당제도가 존재하는가 ③광범위한 정치적 다원주의가 작동하는가 등이 제시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북한이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 스스로 복수정당제도나 정치적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배격하고 있으며, 의사결정과정 역시 수령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이상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진 북한이 자신의 생존 그 하나에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북한이 남조선 해방을 앞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유보할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일위원장과 면담한 남쪽의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조차 그가 경제회생을 위해 지난날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이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소극적 수준에서나마 공존의 길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그 속도와 폭이 어느 정도일 것이냐는 계속 관찰의 대상으로 남는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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