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銀 불법대출]지점장들 "외압없인 불가능"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48분


일개 은행 지점장이 463억원이라는 거액대출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일선 은행 지점장들은 은행 관례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속된 한빛은행 전관악지점장 신창섭씨가 463억원을 박혜룡씨 등 3명에게 대출해 준 사건에 대해 일선 은행 지점장들은 “본점의 최고위층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외압이 있었다면 그 외압은 지점장인 신씨가 아닌 본점 고위층을 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서울 A은행 지점장 김모씨는 “요즘 일선 은행 지점장들에게는 전결권이 거의 없다. 신씨가 혼자만의 재량으로 463억원을 대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각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은행 지점장이 결재할 수 있는 대출 한도액은 20억∼50억원 정도”라며 “그것도 대출을 받는 쪽의 신용등급이 최상이거나 양질의 담보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B은행의 지점장 이모씨도 비슷한 견해. 이씨는 “각 은행마다 직급별로 전결할 수 있는 금액, 즉 전결한도액이 내부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이라며 “한빛은행의 내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점장의 전결한도액이 50억원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압의혹에 대해서도 이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이씨는 “박혜룡씨 등 2명이 100억원 이상 대출을 받았는데 그 정도면 은행장급의 결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즉 대출이 지점장이던 신씨와 박씨 형제 이상의 선에서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C은행의 한 지점장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때 각 은행들이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며 홍역을 치른 뒤부터 어지간한 액수의 대출은 전부 본점의 여신승인부에서 결재한다”며 “이번 사건에는 외압이 개입됐다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압의 실체가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실 행정관(3급)이던 박혜룡씨의 동생 현룡씨 정도였을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지점장은 “박씨 형제가 얼마나 뛰어난 말솜씨를 발휘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청와대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은행측이 현룡씨의 청와대 근무 경력을 확인했다면 대출을 해 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지점장은 “아무리 박씨의 청와대 근무가 사실이더라도 그 정도 금액의 대출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박현룡씨보다는 더 높은 누군가가 ‘실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사 기자가 접촉한 지점장들은 “청탁이나 외압의 주체가 누구건 간에 적어도 은행쪽에서는 지점장 신씨 외에 더 많은 사람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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