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안보이는 의료대란]醫-政 "더 못물러서" 파국 치닫나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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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이 23일 내놓은 의약분업 개선안에 의료계가 ‘수용 거부, 폐업 지속’으로 응수하고 나서 한 가닥 타결의 실마리를 보였던 의료대란이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정부 사실상 최후통첩▼

당정은 이날 발표에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종안’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의료계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서리는 이날 오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고 밝힌 데 이어 의사협회의 정부안 수용거부 후 특별담화를 통해 의사들의 병원 복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응은 너무나 냉랭했다. 의사협회는 태스크포스팀 회의와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중앙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정부의 최종안에 대한 수용 여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는 “더 이상 폐업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시행한 뒤 보완하겠다는 종전의 입장에서 나아진 게 없다. 이 정도를 얻으려고 폐업까지 했느냐”는 강경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많은 젊은 개원의들도 당정의 최종안에 불만을 터뜨렸다. 여기에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승언(史承諺)의쟁투대변인은 “정부안을 놓고 폐업 지속 여부를 묻기 위한 투표에 부칠 가치도 없다. 좀 더 진전된 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말인 24일 정부와 의료계가 극적인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한 의료대란이 다음주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의사들은 더 이상의 폐업은 실익도 없을 뿐더러 여론만 악화시킨다며 폐업 철회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병원협회는 당정의 최종안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면서도 진료는 재개하기로 했다. 개별적으로 진료에 복귀하는 의사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에 따라 24일을 고비로 투쟁의 전열이 흐트러지면서 폐업 사태가 급격히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도 더 이상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고 환자들의 불만도 극에 달한 상황에서 여론의 포화를 받아가며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폐업을 철회하고 의약분업 참여 거부를 선언하는 편이 낫다는 ‘자진 폐업철회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마지막 카드’를 내놓았으며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아가 집단 폐업을 주도하고 있는 집행부 검거, 세무조사 등을 감행할 방침이어서 의정간 물리력 충돌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태가 장기화하든, 우여곡절 끝에 봉합되든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겠느냐는 데 있다.

협상파로 분류되는 한 관계자도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국민의 불편을 극대화시켜 약사법 개정과 의보수가 인상 등의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당정은 의약분업 시행 후 평가단을 구성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약계의 반발이 만만찮은데다 의보수가 인상문제에 대해 시민단체도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돼 정부와 의료계 약계 시민단체 간의 불협화음은 장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불화가 지속될 경우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한다고 해도 결국 파행 운영될 수밖에 없어 분업의 장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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