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환자 실은 119도 길거리 헤맨다

  • 입력 2000년 6월 21일 18시 54분


‘거리를 헤매는 119구급차량.’

의료계의 집단폐업으로 일부 대형병원들이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환자를 실은 119구급차량들이 갈 곳을 잃은 채 거리를 떠돌고 있다.

평소 5∼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대형병원 응급실이지만 진료를 외면해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느라 거리를 빙빙 돌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병원을 찾아도 응급환자들로 이미 북새통이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20일 새벽 식중독으로 밤새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 119구급대에 도움을 청한 양모씨(22·여·서울 종로구 통인동)는 구급차에 실린 채 1시간 가까이 거리를 헤맸다.

양씨와 구급대원들은 K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사정을 호소했지만 ‘의료진이 없으니 다른 병원을 찾아가라’는 냉랭한 답변만 들었다. 인근 G병원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으나 이곳 역시 간호사 2명만 텅 빈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집을 나선 지 1시간 뒤 겨우 세란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양씨는 “환자가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야속할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교통사고를 당한 안모씨(26)와 뇌경색후유증 환자 이모씨(64)를 후송한 서울 역삼소방파출소 119구급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인근 Y, K병원 등이 모두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밤새 다른 병원을 찾느라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서울지역에서 119응급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한 사례는 집단폐업 첫날인 20일 하루 동안만 8건. 한 119대원은 “일부 병원이 당초 예고와 달리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거나 아예 연락조차 안돼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하루 동안 서울지역의 119구급대 출동건수는 평상시에 비해 17% 정도 늘어난 650여건으로 시민들의 119 이용도 크게 늘었다.

서울소방본부측은 “평상시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고령자들이 119구급대를 주로 이용했으나 폐업 이후엔 식중독 환자나 각종 사고 부상자들의 이용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서울 신교소방파출소 조미화구급반장은 “폐업이 장기화될 경우 응급실 찾기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에 119구급대를 찾는 환자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상호·차지완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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