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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15일 2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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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인상은 시골 아저씨처럼 수수하고 소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해 보였다. 그때 내 나이 42세, 그는 47세였다.”(주혜란씨의 미출간 자서전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중에서)
초혼에 실패한 엘리트 공무원과 여의사의 만남. 임창열(林昌烈) 경기도지사와 부인 주혜란(朱惠蘭)씨는 처음 대면하던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임지사가 주씨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 12월16일. 저돌적인 일솜씨로 재무부 이재국장까지 승승장구했던 임씨는 당시 세계은행 이사로 좌천돼 미국에서 시련의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주씨는 잠시 미국에 들렀다 역시 여의사인 여동생의 소개로 임씨를 만났다.
임지사는 노래 잘하고 활달한 주씨에게 끌려 만난 지 두달만인 91년 2월22일 워싱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촛불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평민당 총재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두 사람의 결혼에 적지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지사는 지난해 5월 출간한 자서전에서 ‘김대중대통령과 아내는 잘 아는 사이였고 김대통령이 둘 사이를 부부의 끈으로 이어준 고마운 분’이라고 적고 있다.
주씨도 지난해 4월 완성한 자서전 초고에서 ‘김대통령으로부터 그가 아주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니 꼭 결혼하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확 쏠려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지사는 재혼후 재정경제원 차관과 통상산업부 장관을 거쳐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로 승승장구한다. 이 과정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아내 주씨의 적극적인 내조가 적지 않은 힘이 됐다. 임지사는 자서전에서 ‘국제통화기금(IMF)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아내도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을 불러 식사대접을 하는 등 지원군으로 IMF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고 적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침착한 성격인 임지사와 활달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주씨는 이같은 성격차이로 차츰 충돌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판이한 성장과정도 두 사람 사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임지사는 초등학교 때 신문팔이를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반면 주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랐던 것.
임지사가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후에는 말다툼이 더욱 잦아졌다. ‘경기도에 도지사가 두 명이냐’ ‘주씨는 경기도의 힐러리다’는 등 구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갖가지 화제를 뿌려온 임지사 부부. 이제 두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맞았다.
〈이진영기자·수원〓박종희기자〉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