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방북]실향민 1천여명 새벽부터 「눈물환송」

  • 입력 1998년 6월 16일 19시 30분


“사람은 언제 가나. 소 만도 못한 이 내 신세….”

16일 오전 북녘 땅을 향하는 ‘통일 소떼’를 지켜보는 실향민들의 눈가에는 향수(鄕愁)의 물기가 어렸다. ‘몸’은 남쪽에 있었으나 ‘마음’은 ‘우공(牛公)’들과 함께 북의 고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듯.

이날 오전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의 방북 환송행사가 열린 임진각에는 문산과 파주에서 하룻밤을 보낸 실향민 1천여명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51년 평북 용천군에서 월남한 김봉민(金烽旻·75·경기 남양주시)씨는 “우리는 같은 피, 같은 뿌리를 지닌 한겨레로 꼭 통일이 돼야한다”면서 “눈감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며 아내(75)의 손을 꼭 잡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소를 어루만지던 이윤오(李倫午·69·경기 동두천시)씨는 “고향인 평북 자성군에서 누런 황소를 몰며 쟁기질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백발이 되고 말았다”면서 “52년 단신으로 떠나온 뒤 고향을 가슴에 묻어뒀지만 행여 고향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신문과 방송을 들여다 본다”고 말했다.

한 70대 실향민은 ‘내 희망을 싣고 가는 소떼야. 북녘땅 동포에게 통일의 꿈을 일궈 꼭 다시 돌아와다오’ 란 문구가 적힌 작은 피켓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간단한 행사를 마친 뒤 소를 실은 트럭이 임진각을 떠나 통일대교로 달려갈 때 실향민 몇명은 ‘고향을 향해가듯’ 대형 태극기를 든 채 그 뒤를 쫓아가기도 했다.

이날 정오무렵 실향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던 실향민들은 이번 소떼의 방북얘기를 화제 삼으며 하나둘씩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48년 가족을 남겨둔 채 고향인 함경도 단청을 떠난 원시춘(元始春·68·서울 잠원동)씨. 원씨는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고향의 부모형제를 보고 싶은 마음은 1천만 이산가족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라면서 “소를 보낸 것을 계기로 민간교류의 물꼬가 트여 올해나 내년중에는 가족들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눈가를 훔쳤다.

실향민들의 ‘마음’은 트럭에 실려간 소떼와 함께 어느새 북녘땅을 밟고 있는 것일까.

〈이헌진·윤상호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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