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특혜대출비리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가 열린 26일 오후1시반 대법원 제2호 법정에는 한보그룹 관계자 10여명과 관련 정치인의 친인척 몇명만 참석해 법정안은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에 비해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방청객들은 주심인 신성택(申性澤)대법관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유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상한 듯 무표정한 반응을 보였다.
법정에 왔던 한보그룹 관계자는 『아쉬움은 남지만 예상했던 일이라 별다른 느낌이 없다』며 『단지 뇌경색으로 고생하는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 하루빨리 형집행정지로 출감하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한보그룹 관계자는 정총회장이 두달 전부터 뇌경색과 당뇨 악화로 가족이 면회갈 때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거나, 교도관의 등에 업혀 나오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했다고 설명.
정총회장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전해듣고 『은행도 무너지는 마당에 한보철강이 살아남겠느냐』며 재기의욕을 완전히 포기한 모습이라고 측근들이 전언.
당초 정총회장은 한보철강만은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했으나 한보철강에 대해 감자(減資)가 이뤄지면 정씨 일가의 주식지분도 사실상 없어질 판이어서 재기를 거의 포기했다는 후문.
○…정총회장과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박상길(朴相吉)서울지검 특수3부장은 『대법원 판결은 예상했던대로 나왔고 시원섭섭하다』면서도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라며 답변을 거부.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 사건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전형으로 현재의 국가위기를 초래한 금융경색의 시발이 된 사건』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
이 관계자는 『당시 은행들은 이자차익을 노리고 외화를 마구 들여온 뒤 사업의 타당성은 묻지도 않고 기업에 돈을 쓰라고 종용했는데 한보특혜대출은 이런 면에서 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라고 언급.
○…이날 대법원 판결로 홍인길(洪仁吉)피고인 등 구속자들의 사법처리가 모두 끝난 반면 정총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국민회의 김상현(金相賢), 한나라당 노승우(盧承禹)의원은 「의정활동」을 이유로 재판을 계속 지연하고 있는 상태.
두 의원은 지난달 24일로 예정됐던 1심 구형공판을 29일로 연기했다가 26일 갑자기 『국회 재정경제위 금융개혁입법심의에 참가하니 공판을 1월 19일로 연기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 이들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2월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
〈공종식·신석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