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金賢哲(김현철)씨의 87억원대 비자금계좌를 찾아냄으로써 현철씨 비리의 「의혹」이 「사실」로 전환되고 있다. 검찰이 이번에 찾아낸 비자금계좌는 이전에 발견된 다른 어떤 증거보다 현철씨 비리의 참모습을 증명하고 있다. 검찰도 계좌에 입금된 돈의 성격과 내용으로 볼 때 이권개입과 관련된 증거가 뚜렷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검찰관계자는 『이제 승부가 끝났다』고까지 말했다.
현철씨의 비자금 계좌는 외견상 평범한 시골 노인의 계좌였다. 계좌 명의인으로 되어 있는 박모씨(73)는 李晟豪(이성호)전대호건설사장의 자금관리인 역할을 해온 전 대호건설 종합조정실장 金鍾郁(김종욱)씨의 장인. 그는 공직에서 은퇴한 뒤 강원도의 소도시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노인이다.
박씨는 8일밤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위가 한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계좌의 관리도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돈을 입금시킬 때 뭉칫돈으로 하지 않고 잘게 쪼갠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고 다시 현금을 수표로 바꾸는 식의 돈세탁을 철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검찰이 문제의 계좌를 찾아내는데 큰 애로를 겪었음은 물론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 계좌를 찾아낸 뒤 곧바로 이것이 현철씨의 비자금계좌라는 점을 포착했다. 검찰은 현철씨가 이 계좌에서 수억원의 뭉칫돈을 수시로 출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 계좌의 주인이 현철씨라는 사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계좌의 조성과정이다. 검찰은 계좌에 입금된 자금중 일부가 이씨의 사업체 수익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일단 이씨가 현철씨에게서 자금을 받아 철강판매회사 등 신규사업에 투자하거나 기존사업을 확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자금을 불리고, 이렇게 해서 불린 돈을 이 계좌에 입금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현철씨는 대신 이씨가 이권을 따내는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과정은 알선수재의 전형을 보여준다.이번에 처음 발견된 현철씨의 비자금계좌는 그의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공종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