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추행’ 유족 “가해자 더 있다”… 3명 추가 고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3일 1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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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이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연현실에 놓여 있다. 2021.6.2/뉴스1 © News1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이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연현실에 놓여 있다. 2021.6.2/뉴스1 © News1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가 생전에 최소 2차례 더 성추행 피해가 있었다면서 유족이 3일 고소장을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했다. 이 중사가 소속 부대(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성추행 범죄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로 확인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건 전반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보고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최고 상급자’를 비롯한 군 지휘라인에 대한 강도 높은 문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중사의 유족 변호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가해자인 장 모 중사가) 뒤늦게나마 구속됐지만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며 “핵심적인 부분은 2차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일단은 3명을 추가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유족이 추가로 고소한 3명 가운데 1명(A상사)에게는 강제추행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전 한 회식 자리에서 타 부대에서 20비행단으로 파견 온 A 상사가 이 중사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유족 측은 의심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은 이 중사가 3월 장 중사로부터 차량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최초 보고를 받고도 회유·은폐 의혹이 제기된 B상사와 C준위로 직무유기 및 강요미수 혐의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은폐의 중심에 서 있는 부사관 2명 중 1명이 피해자를 직접 강제추행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고소장도 제출했다”고 말했다.

유족의 주장을 종합하면 구속된 장 중사 외에 성추행 가해자가 최소 2명이 더 있었다는 것. 다른 2건의 사례 역시 정식 신고는 아니었지만 이 중사가 직접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고소장을 토대로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 및 구속 영장 청구 등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유족의 고소장 제출 직후 공군은 B상사와 C준위에 대해 정상적 직무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보직해임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3일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피해 신고 이후 부대 내 처리, 상급자와 동료들의 2차 가해, 피해호소 묵살, 사망 이후 조치 미흡 등에 대해 엄중한 수사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만 보지 말고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지시는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군 당국의 회유·은폐 의혹 등이 증폭된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워낙 심각하고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나왔다”며 “(대통령은) 계속 관심을 갖고 안타까움을 표해왔다”고 밝혔다.

군 검찰과 군사경찰, 국방부는 사실상 합동수사단 체제를 가동해 대대적인 원점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수사단은 구속된 장 중사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이 중사로부터 피해 사실을 보고받고도 조직적으로 회유·은폐에 가담한 의혹이 제기된 관련자들을 전원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 중사의 최초 피해 신고 이후 비행단장(준장)을 거쳐 공군본부와 국방부까지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 보고됐는지도 핵심 조사 대상이다. 사건 초기 상부 보고가 누락·지연되면서 이 중사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과정을 포함해 지휘라인 문제를 점검하라고 지시한 만큼 늑장·부실 보고가 확인될 경우 해당 부대장부터 공군·국방부 고위인사 등이 대거 지휘문책을 받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단은 20비행단 군사경찰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 중사의 사망 사건을 최초 보고하면서 성추행 피해를 누락한 채 ‘단순 사망’으로 규정하고, 성추행 사건 다음날 장 중사의 범죄 정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를 압류하지 않는 등 부실수사 의혹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해당 부대와 공군본부를 대상으로 이 중사에 대한 피해자 보호관찰의 적절성 여부도 규명할 계획이다. 군 소식통은 “사건 초기 피해자와 가해자의 즉각적 격리조치 여부를 비롯해 이 중사가 두 달여간의 청원휴가를 마치고 옮긴 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해당 부대와 공군본부의 관련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인사 등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군 검찰 차원에서 수사심의위가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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