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에 애끓는 이산가족 “정치인들, 분단의 아픔 아나”

뉴스1 입력 2020-06-23 10:56수정 2020-06-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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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대상자였던 장구봉씨(82·오른쪽). © News1
“남북관계가 경색되니 이젠 만나기가 더 어려워지겠지…. 형님네 주소라도 알려주면 생필품이라도 보내줄 텐데.”

지난 22일 강원 속초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가족 장구봉(84·속초)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책상 위에 놓인 그의 형 장운봉(88)씨의 사진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장운봉씨는 이북에 있는 형의 신청으로 지난 2018년 금강산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헤어진 지 70년 만에 형을 다시 만났었다.

장씨는 “시국이 이러니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옛날이든 지금이든 (남북을 떠나) 정치하는 사람들만 ‘사상이 어떠니’ 떠들어대고 있지 정작 분단의 아픔을 알긴 알겠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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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산가족 상봉 당시, 장씨는 꿈에만 그리던 형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온갖 선물을 바리바리 들고 갔다. 적십자로부터 북에 가져갈 수 있는 선물 무게가 30㎏에서 20㎏으로 줄었다는 말에 준비했던 방한복, 화장품, 상비약 등을 최대한 여행가방 5개에 꾹꾹 눌러 담았다. 혹시 몰라 조카를 위해서도 크레파스, 색연필, 볼펜까지 챙겼다.

“형님 건강을 위해 2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인삼진액과 전자 배터리가 필요 없는 오토매틱 시계도 준비했다”며 꼼꼼하게 신경 썼던 그때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의 형이 장씨를 위해 들고 온 선물은 고작 술 두 병이 전부였다.

“북한 체제 선전만 하더라고.”

장씨는 상봉에서의 남은 시간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중에라도 형에게 생필품을 보내주기 위해 형의 집 주소를 물었다. 하지만 형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끝내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북에선 세금도 없다. 먹을 것, 지낼 곳 모두 나라에서 다 지원한다. 교육도, 의료도 모두 공짜”라며 앵무새 같이 체제 선전만 반복했을 뿐이다.

장씨는 “재상봉을 한다면 그 땐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북의 감시와 체제선전 때문에 서로 할 말도 제대로 못했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장씨는 1950년 당시 북한 땅이었던 양양군 속초읍 논산리, 현재 속초시 조양동에서 살았다. 통신시설이 없다보니 전쟁이 발발한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는 군대를 피해 17살이었던 형은 “며칠만 갔다 내려오겠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어머니와 13살이었던 동생을 두고 중학교 담임선생님을 따라 북으로 피난했다.

1·4 후퇴 때 동네사람들이 돌아왔지만 형과 담임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행기가 피난행렬을 공습하면서 죽었을 거라고 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이북에 있는 형님이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70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감격적인 만남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속초=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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