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챙기기 나섰다” 비판에…‘질병관리청 개편안’ 전면 재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2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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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국내 감염병 대응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중심으로 한 조직개편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갔다. 입법 추진 과정에서 관련 부처들이 방역체계 강화라는 본질을 제쳐놓고 실속 챙기기에 나선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5일 문 대통령 지시 후 청와대는 “감염병연구소는 전체 바이러스 연구를 통합해 산업과도 연관시키려 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로 가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질본) 조직을 축소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질본의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 맞게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논란의 대상인 국립보건연구원과 확대 개편될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질본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문가가 반대한 내용이 최종 개편안에 담긴 배경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민간전문가들로 이뤄진 정책기획위원회도 보건연구원을 질본과 분리하는 법안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감염병 연구기관이라도 떼어주고 분리하면 모를까, 다 떼어가면 질본에 남은 행정인력이 코로나19 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이렇게 이관해서는 안된다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보건연구원이 질본에서 분리돼 독립조직이 되면 오히려 감염병 대응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정부는 미국의 국립보건원(NI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처럼 양 기관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질병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한 보건 전문가는 “연구원을 아예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조직으로 만들 게 아니라면 질본 산하에 두는 게 낫다”며 “인력, 예산도 없는 상태에서 독립하면 부처의 행정관료들에게 휘둘리는 조직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조직 이기주의가 부실 입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처 입장에서는 산하기관을 늘어나면 인사 적체를 해소할 수 있고 전문가들을 부처와 관련한 연구와 조사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복지부가 2차관을 신설하면서 연구원 등 관련 조직을 보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 CDC가 예방관리 정책을 시행하지만 연구와 실험을 하지 않고 행정업무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연구기관은 물론이고 지방조직과 예산 등을 잘 갖춘 뒤 독립을 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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