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장남 김홍일 前의원 별세…“민주화 동지이자 희생자”

  • 뉴스1
  • 입력 2019년 4월 20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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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내란음모사건’ 휘말려 고문…이후 평생 ‘파킨슨병’ 앓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20일 오후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용인 묘지에서 성묘를 하는 모습. (김대중도서관 제공) 2019.4.20/뉴스1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20일 오후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용인 묘지에서 성묘를 하는 모습. (김대중도서관 제공) 2019.4.20/뉴스1
김대중 전 대통령(20일)의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국회의원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故) 김 전 의원은 부친인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동지이면서, 군부 독재정권의 고문 피해자, 희생자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부친이 정치에 입문하고 첫 국회의원에 선출된 1963년 즈음 상경했다. 이후 배제중과 대신고를 졸업한 뒤, 경희대에서 정치외교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군부독재 저항, 민주화의 기수로 우뚝섰던 1980년대, 당시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고문·투옥 등을 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김 전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계엄령 선포 당시,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것이 평생 지병인 ‘파킨슨병’을 얻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훗날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뜨니 새 얼굴이다”, “네가 대중이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라고 회고했다.

고문으로 인해 목과 허리 신경 등을 다쳤음에도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치료는 커녕 더 가혹한 고문과 폭행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파킨슨병에 걸리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항쟁‘으로 직선제로 바뀐 대선에 평화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등 야권 후보 난립에 따른 지지층 분열로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후 김 전 의원은 다음해인 1988년 평화민주당의 외곽조직인 ’청년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부친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김 전 의원은 부친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1년 전인 198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고향인 전남 목포·신안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을 한다.

그러나 재선 의원을 지내던 당시부터 파킨슨병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해졌다. 2004년 총선에서도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돼 3선이 됐지만 파킨슨병이 급격히 악화됐다.

설상가상 지난 2006년 상태 전 나라종합금융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을 대가로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이후 김 전 의원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으며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009년 8월에는 휠체어 신세를 지며 소통과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표적 ’동교동계(DJ계)‘인사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김 전 의원의 별세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은 김대중 대통령님 장남이시며 정치적 동지이셨다”며 “고인은 민주화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하셨으며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10여년 이상을 투병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하늘나라에 가셔 부모님을 만나 한반도 평화통일과 고문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일을 하시리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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