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붉은깃발법 때문에 車산업 뒤처져… 혁신은 타이밍이 생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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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규제완화 시동]文대통령, 혁신성장 드라이브

QR코드 간편결제 체험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QR코드 간편결제 방식으로 음료수를 구입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QR코드 간편결제 체험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QR코드 간편결제 방식으로 음료수를 구입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영국은 마차업자를 보호하려고 ‘붉은 깃발법’을 만들었는데 결국 자동차산업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은산(銀産)분리 규제를 ‘붉은 깃발법’에 비유했다. 문 대통령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며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았는데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규제 때문”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존치를 주장하고 있는 은산분리를 시대착오적인 악법으로 규정한 것. 전날 경제정책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기치로 내건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 정책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은산분리 완화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로 하면서 하반기 혁신성장 정책의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 ‘메기론’으로 핀테크 육성 의지 설파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금융산업의 시장구조는 기존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굳어져 왔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는 금융권 전체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겹겹이 쌓인 규제의 철옹성 속에 소수의 대형은행이 장악한 금융시장에 경쟁 구도를 가져오려면 은산분리 완화를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를 넣어 미꾸라지들이 도망 다니다 더 강해진다는 ‘메기론’을 설파한 것.

이어 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은 금융 분야와 신산업의 혁신성장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물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의 상징적인 정책으로 부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거리의 작은 가게까지 확산된 모바일 결제, 핀테크 산업을 보고 아주 놀랐다”며 “이번 규제 혁신이 핀테크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6월 말 인터넷전문은행 육성 방안 등 규제 혁신 점검회의 준비 상황을 보고받고 “답답하다”며 회의를 개최 3시간 앞두고 전격 취소한 바 있다. 그만큼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를 일자리 창출과 서민·자영업자 금융 부담 완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QR코드’를 활용한 음료 구입을 직접 체험하면서 결제수수료가 최고 0.4%라는 설명을 듣고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겠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 시민단체 반대에도 정면 돌파 택한 文

문 대통령이 두 번째 규제 혁신 현장 방문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택한 것도 의미가 크다. 정보기술(IT) 기업이 참여해야 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은산분리의 완화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2015년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을 인가할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은산분리 완화를 강하게 반대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 역시 대선후보 시절 은산분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시민단체의 반대도 부담이다. 진보 진영은 은산분리 완화를 정부 경제정책 기조 전환의 상징적인 조치로 보고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은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혁신성장을 위한 과감한 조치를 더 늦추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날 행사를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 없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연 문 대통령이 “시민의 공간에서 국민을 위하고, 기업 발전을 위한 규제 혁신을 시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이뤄내고자 한다”며 이해를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은산분리를 완화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를 제때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은산분리 완화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제윤경 의원은 이날 행사에 초청받고도 불참했다. 제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은산분리 일부 특례법에는 찬성하지만 ‘KT를 위한 맞춤형 법 아니냐’는 오해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박성진 기자
 
::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 ::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조례. 증기자동차의 등장으로 마차업자들이 항의하자 자동차 최고속도를 시속 3km(도심)로 제한하고 마차를 탄 기수가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로 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하도록 한 조치로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붉은깃발법#자동차산업#혁신은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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