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문형표, 삼성합병 찬성 보고서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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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긴급체포된 문형표… 특검 “구속영장 방침”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다가 28일 오전 1시 45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오전 4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입감된
 문 전 장관이 수의를 입고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호송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긴급체포된 문형표… 특검 “구속영장 방침”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다가 28일 오전 1시 45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오전 4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입감된 문 전 장관이 수의를 입고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호송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60)이 어떻게 해서든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의견을 내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의 보고서 작성을 복지부 간부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개별 투자 결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 특검은 문 전 장관의 지시가 합병 찬성 의결을 압박한 단서이자 국민연금 기금 운영의 독립성을 무너뜨린 핵심 정황으로 보고 있다.
○ 합병 찬성 보고서, 문 전 장관이 작성 지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1일 복지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복지부 실·국장들이 작성한 합병 찬성 의결 보고서를 압수하고 보고서의 전달 경로를 추적 중이다. 이 보고서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의결에 대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면서 어떻게든 합병 찬성 의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복지부 실무자들은 28일 특검에서 문 전 장관과의 대질신문을 통해 “문 전 장관의 지시로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문 전 장관을 비롯해 복지부에서 합병 찬성을 내라는 압력이 심하게 들어 왔다”고 진술했다. 홍 전 본부장은 또 “문 전 장관의 지시에 따랐고,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예산과 인사권한을 쥐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특검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문 전 장관은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한 일이 없다”며 부인했다. 특검은 문 전 장관을 28일 오전 1시 45분경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특검은 28일에 이어 문 전 장관 조사를 계속하며 29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특검은 문 전 장관이 합병 찬성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해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않는 일을 주도한 배경에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직후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사이에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0)에 대한 지원 방안이 적극 추진된 점도 특검의 의심을 사고 있다.
○ 재계 “당시 국익 고려한 결정” 의견도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있는 동시에 우리 경제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 때문에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미국계 투기 자본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며 합병에 반대하면서 국민연금이 국익을 위해 찬성 의결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특검과 박근혜 대통령, 삼성 등 3자 간에 향후 법적 책임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이 민감한 문제를 외부 전문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내부 투자위원회만을 거쳐 의결권을 행사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 측은 “의결권 행사는 내부 투자위원회를 우선적으로 거쳐 판단하고 찬반을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을 외부 전문위원회에 넘기도록 규정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국가 경제의 방어막 역할을 하는 연기금으로서 국익을 고려해 합병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을 헐값 매입한 론스타,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자산운용과 칼 아이컨의 사례 등에서 국내 기업은 그간 헤지펀드의 공격에 취약했다. 삼성마저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우리 기업을 공격하는 헤지펀드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국민연금 재원 고갈을 우려하면서 “개인이 부담하는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던 문 전 장관이 합병 비율이 국민연금에 불리한데도 찬성 의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합병에 찬성한 대가로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의 투자 손실을 봤다는 의혹도 있다. 합병 찬성 이전 국민연금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지분 평가액은 2조3827억 원이었지만 올 9월 30일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5.78%의 평가액은 1조6337억 원으로 합병 전보다 7400억여 원이 적다.

장관석 jks@donga.com·이건혁·김준일 기자
#문형표#삼성#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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