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건의받은 111건중 권한이양 ‘0’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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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권한 넘겨라” 지방자치委 줄기찬 압박에도…

국토교통부가 최근 13년간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넘기라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건의를 111건이나 받았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 등을 포함해 실제 권한이 이양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행정의 실력과 재정 수준 등이 권한을 넘겨받기에 성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권한 이양이 계속 늦어질 경우 올해로 20년을 맞은 민선 지방자치제가 제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지자체 이양사무 목록 및 향후 계획’에 따르면 2002년부터 최근 13년간 대통령 소속 지방이양추진위원회 또는 지방분권촉진위원회(현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국토부에 111건의 권한 이양을 건의했다. 국토부는 지자체와 관련된 업무가 가장 많은 정부 부처 중 하나다.

이들 건의와 관련해 권한을 이양하도록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됐거나 심의 단계에 들어간 사안은 36.0%(40건)이지만 지금까지 법률 개정이 끝나 지자체로 실제 권한이 넘어간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 밖에 ‘이양이 불필요하다’라는 결론이 난 사안은 35.1%(39건), 법제처가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건의를 반려한 사안은 13.5%(15건), ‘장기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사안은 7.3%(8건) 등이었다.

지방 이양 건의를 받은 업무 중 상당수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가 늦어지거나 부처 현안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며 권한 이양을 위한 관련 법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

▼ 국토부, 지방정부 권한까지 ‘군침’ ▼

지방자치발전위는 2002년에 택시미터의 기능을 검정하는 기관을 지정하고 이들을 감독하는 권한을 지방에 넘기도록 국토부에 건의했다. 국토부는 이 권한을 넘기기 위한 개정안을 다음 달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건의에서 관련 법 개정까지 13년이 걸린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미터 검정기관 지정 권한은 자동차안전법을 제정해 넣으려고 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와 이견이 있어 계속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중앙정부 부처인 국토부가 지방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까지 넘보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국토부는 올해 7월 중앙정부의 도시계획 기능을 재정립하는 ‘미래 도시정책 수립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지방분권 확대에 따라 각 지역의 도시계획 권한이 지방에 이양돼 중앙정부의 관리 수단이 부족해졌다는 게 이유였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가 권력을 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회 정책연구실장은 “중앙 부처들이 예산과 인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지방에 넘겨도 문제가 없는 권한까지 무조건 쥐고 있으려 한다”며 “각종 권한의 지방 이양을 활성화하려면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인 지방자치발전위를 국가 행정기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지방자치발전위의 건의 사안들이 지자체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방자치발전위가 2012년 권한의 지방 이양을 건의한 주택사업자 등록 업무는 일부 지자체들이 넘겨받기를 부담스러워해 없던 일이 된 적이 있다. 한 중앙부처의 관계자는 “지방자치발전위가 이양을 건의한 권한 중 지역 현실을 모르고 무리하게 추진한 업무도 꽤 된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발전위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지방분권을 위한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같은 해 지방이양추진위란 이름으로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에 지방분권촉진위로 바뀌었다가 2013년 9월에 현재의 체제가 됐다. 현 정부 들어서는 아직까지 중앙정부의 권한 중 지방 이양을 건의한 사례가 없다.

조은아 achim@donga.com·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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