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K-21 장갑차 성능미달에도 합격 판정… 침수사고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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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2010년 징계보고서’ 보니…

2014년 11월 경기 연천군 다락대 훈련장에서 열린 방위사업청 시연회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K-21 장갑차의 파도 차단장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해 말 출범한 방위사업 비리 정부 합동감사단과 합동수사단의 주요 조사 대상에는 거듭된 침수와 사망 사고로 체면을 구긴 국산 장갑차 K-21도 포함돼 있다. K-21은 8년여에 걸쳐 910억 원을 들여 독자 개발한 최신예 장갑차로 적의 헬기와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세계 정상급 성능을 갖췄다고 국방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K-21이 거듭 침수 사고를 내자 국방부는 합동감사를 벌인 뒤 2010년 11월 사고 원인을 발표했다. 또 각급 기관에 솜방망이 수준인 경고 조치를 요구하는 선에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가 일선에 내려보낸 개별경고 요구 상세내용에는 수년에 걸쳐 이뤄진 K-21 연구와 제작에 관여한 △국방과학연구소(ADD)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두산DST의 부실한 업무 처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쌓인 조그마한 과실들이 더해지면서 사고는 예견됐던 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업체와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추가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군 요구보다 무거운 파워팩 선정

국방부는 ADD에 관련자 경고를 요구하면서 K-21 파워팩(엔진과 변속기가 결합한 핵심 부품)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지적했다. ADD가 K-21의 무게중심과 전방 부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파워팩을 선정하면서 1999년 탐색개발 단계부터 군이 요구한 엔진출력(520∼650마력)에 비해 장갑차 앞쪽 무게를 크게 증가시키는 과도한 출력의 엔진(750마력)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앞서 K-21의 주요 사고 원인은 △전방부력 부족 △파도막이 기능 상실 △엔진실 배수펌프 미작동 등으로 지적됐다.

K-21 개발시험 평가 과정에서는 최소 기준에 미달하는 결과를 그대로 합격 처리한 일도 있었다. 국방부는 ADD가 수상 운행 시 장갑차가 물 위로 노출되는 높이로 부력과 차체 균형을 판단하는 요소인 ‘건현’ 측정 시험에서 최소 기준(20cm)에 미달했는데도 통과시킨 부분을 찾아냈다. ‘보병하차 중량에서의 전투모드’에서 좌측 전방 건현이 15cm로 측정됐으나 합격 처리된 것. 또 스스로가 제시했던 최소 건현을 30cm에서 20cm로 줄였고 보존 부력은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점, 시험평가 후속 조치로 증가한 중량에 따른 건현 변화 측정을 소홀히 한 것도 지적됐다.

방위사업청 분석시험 평가국도 2010년 4월 개발시험평가 당시 좌우 건현이 45∼50mm까지 차이가 났지만 ‘기준 충족’ 판정을 내렸다. 또 방사청은 2009년 9월 “장갑차 침수 사실이 있다. 정확한 원인 분석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육군 시험평가단의 통보를 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K-21 침수에 따른 사망 사고가 2010년 7월 발생했는데, 신속한 추가 조치가 있었다면 사망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파로 목표물을 탐지한 뒤 2m 주변에서 폭발해 헬기를 격추시키는 기능인 ‘근접기능’과 관련한 ADD의 성능 시험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국방부는 1, 2차로 진행된 성능시험 기준 높이가 각각 8m와 11.5m로 다르게 설정됐으며 시험발수도 다른데 이를 단순 합산 후 통과시킨 점은 타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 ‘파도막이’는 제작 업체가 임의로 설계 제작

거듭 말썽을 일으킨 K-21의 파도막이는 ADD가 설계나 제작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 제작사인 두산DST가 관련 업체 DACC와 함께 임의로 설계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파도막이는 장갑차가 수상 운행할 때 파도를 막아 주고 수중에서는 장애물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보조장치다.

국방부는 ADD가 장갑차 개발 기간 중 파도막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파도막이 품질보증등급을 C등급으로 낮게 지정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파도막이의 강도, 강성, 중량, 프레임 제작 방법, 상세 공정 등에 대한 규격은 정하지 않았고 제작업체가 임의로 설계·제작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 단가 산정에도 업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제작된 파도막이는 결국 분쟁의 대상이 됐다. 두산DST는 도면을 수정해야 하는 사안에 해당하는 파도막이 프레임을 변경하면서 변경 사유를 ‘재질 표기 오기 수정’으로 기술 변경을 요청했다. 국방기술품질원 창원센터는 2008년 8월 세부 검토 없이 두산DST의 기술 변경 신청을 승인했다. 또 DACC는 파도막이 강도 보강을 토의하면서 시험용으로 제작한 파도막이도 군에 납품해 파도막이 형상이 5가지가 존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술품질원은 두산DST가 형상을 임의로 변경한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

두산DST가 2010년 5∼9월에 걸쳐 육군 20사단 110기보대대를 방문해 파도막이 28대를 임의로 교체한 일도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의원실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51대의 K-21 파도막이가 훈련 도중 파손됐다.

ADD는 또 장비 양산의 토대가 될 규격자료를 확정하면서 상세 설계 도면을 검토하지 않고 업체에 위임하기도 했다. 국방기술품질원도 ADD와 방사청을 건너뛰고 두산DST로부터 직접 도면을 받아 활용하다 문제가 됐다.

장관석 jks@donga.com·조동주 기자
#장갑차#방위사업#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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