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일정 취소하고 화합조치 장고…朴, TK필승대회 참석 고심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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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한나라당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명박 당선자(왼쪽)가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화합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운데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 동아일보 자료 사진
8월 20일 한나라당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명박 당선자(왼쪽)가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화합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운데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재오 최고위원이 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직과 선대위 부위원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이명박 대선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진영 사이의 갈등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지 주목된다. 당 안팎에서는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사이에 화합을 위한 사전 교감이 이미 끝났고 실질적인 행동만 남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최고위원의 이날 사퇴가 사전 교감의 전제 조건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는 이날부터 화합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놓고 각각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

“이재오 백의종군 뜻 높이 평가하고 신뢰”

○ 장고에 들어간 이명박

이 후보는 이날 잡힌 일정을 대폭 줄여 가며 측근들과 대책을 숙의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과의 인터뷰, 농어민 관련 ‘타운미팅’ 일정을 취소한 이 후보는 이날 평소처럼 오전 5시에 일어나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등 경제원로 자문그룹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조찬을 한 뒤 곧장 서울 종로구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로 출근했다.

몇 차례 사적인 면담을 한 뒤 이 후보는 곧바로 임태희 후보비서실장, 권택기 스케줄팀장과 회의를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발표 1시간 전이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이방호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일정을 전면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 후보는 이날 유일하게 남겨 놓은 일정인 재향군인회 초청 토론회 원고를 막판까지 수정했다. 보수층을 파고들며 이 후보의 국가관, 대북관 등을 비판한 이회창 전 총재를 견제하기 위해선 이날 토론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고 수정을 위해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현인택 고려대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등이 안국포럼을 찾았고, 이 후보는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종본을 보고받았다.

이 후보는 오후 1시 15분경 서울 시내 모처에서 현안 대책회의를 열었다. 박 전 대표 포용 방안과 이회창 전 총재 출마에 따른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한 측근은 “이 후보는 오늘부터 정국 구상과 박 전 대표 측에 제시할 구체적인 화합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며 “내일 일정도 모두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향군 토론회가 끝난 뒤 이재오 최고위원의 백의종군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그 뜻을 높이 평가하고 신뢰한다. 반드시 당 화합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 측은 일단 12일 경북 구미시에서 열릴 대구·경북 필승결의대회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박 전 대표가 참석할 경우 이 후보의 화합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李측 6인회의’ 李후보 지시로 해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 측의 사실상 막후 의사결정 기구 역할을 해 온 ‘6인 회의’가 해체됐다.

이 후보의 핵심 측근은 8일 “6인 회의에 대한 논란이 많아 폐지하기로 했다”며 “내부 건의로 후보가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

6인 회의는 이 후보와 이상득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 박희태 김덕룡 이재오 의원이 멤버로 각종 중대사를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경선 기간에는 수시로 만났으나 경선 이후에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꾸준히 모임을 가져 온 것으로 전해졌다.

6인 회의 해체는 이 최고위원이 8일 사퇴한 것과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는 ‘밀실정치’에 대한 비판이 작용했다는 후문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이 6인 회의에 대해 좋게 보지 않은 점을 들어 6인 회의 해체가 박 전 대표 측에 대한 유화책이라는 해석도 있다.


촬영:이종승 기자

朴 이틀째 국회 불참… 측근 “李사퇴 진정성 없어”

○ 결단 앞둔 박근혜

이 최고위원이 전격 사퇴했지만 박 전 대표는 이 후보 측의 조치에 답변을 미룬 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틀째 국회 본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당 화합의 걸림돌’로 지목했던 이 최고위원이 사퇴함에 따라 공이 자기 진영으로 넘어오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해 유승민 최경환 이혜훈 허태열 유정복 등 측근 의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모여 이 최고위원의 발언을 비판했다. 모임 후 유승민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 최고위원 사퇴에는 화합의 진정성이 없다”며 “박 전 대표를 겨냥해 당내 권력 투쟁에 골몰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과와 사퇴의 진정성이 없음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고, 당 화합을 위한 사퇴가 아니라 마치 권력 투쟁의 희생양인 양 착각하는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최고위원직을 물러나는 사람이 박 전 대표에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라고 말한 것은 과대망상의 극치다. 이런 식의 사퇴라면 차라리 최고위원직에 그냥 계시라”고 주장했다.

한편 유정복 의원은 박 전 대표가 12일 대구·경북 지역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하는지에 대해 “아직 논의하지 못했다. 당일 다른 일정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이 최고위원이 사퇴했다고 해서 금방 태도를 바꿔 ‘이 후보 지원’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이 최고위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이제부터 박 전 대표는 각급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하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 오히려 박 전 대표를 자극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이 후보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박 전 대표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총재를 돕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다.

우선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의 지지 기반이 △대구·경북(TK) △대전·충청 △50대 이상으로 대부분 겹치기 때문에 연대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작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20%대를 형성하면서 경선 이전 박 전 대표 지지율의 거의 대부분이 이미 흡수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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