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문서 191건 공개]박정희-美대사 설전 등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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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베트남전 종전 직전 한국 공군 전투기의 베트남 이양과 1960, 70년대 재일교포 북송(北送) 문제 등도 포함돼 있다.》

●박정희-美대사 설전

1972년 10월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는 베트남 정부의 전력보강을 위해 한국이 F-5A 전투기 48대를 이양해달라는 닉슨 미 대통령의 친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우리 공군 전력과 조종사들을 무력화시키면서까지 협조할 수 없다. F-5A 2개 대대(36대)를 줄 테니 미국이 F-4 전투기 1개 대대(18대)를 한국에 제공해 달라”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하비브 미 대사는 “당초 한국의 모든 F-5A 전투기(76대) 이양을 요구했다 48대로 낮춘 것”이라며 “한국에 넘겨줄 F-4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비브 대사는 이어 “한국 조종사들을 위해 훈련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지만 박 대통령은 “연습기로 어떻게 싸우나. 평양서 여기까지 5∼10분이면 어디 맞은(공격받은) 후인데 즉각 반격해 적 공격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자 하비브 대사는 “베트남 문제를 해결 못하면 (미국이) 한국문제에 협조하는 데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한국은 2개 사단을 파병하는 등 미국의 베트남정책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며 “미국 요구만 강요하면 어떡하나. 한국 방위의 1차적 책임은 닉슨 대통령이 아니라 내게 있다”며 맞받아쳤다.

결국 이 문제는 한국이 F-5A 전투기 36대를 베트남에 이양하고 미국이 F-4 1개 대대를 한국에 대여키로 양국이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14년간 9만명 보내

연도별 북송 재일한인 수
연도(년)인원(명)
19592942
19604만9036
19612만2801
19623497
19632567
19641822
19652255
1966∼1972.5.5512
총계9만432
자료:외교통상부

1959년 12월 14일 북-일 적십자사 사이에 맺은 캘커타(콜카타) 협정에 따라 975명이 만경봉호를 타고 처음 북한으로 건너간 뒤 1972년 5월까지 9만432명이 북송됐다.

1966년 4월 29일 주일 한국대사관 보고에 따르면 당시 일본 외무성 구로다 북동아과장은 ‘래디컬(radical)한 분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것이 일본 측의 기분’이라고 밝혔다.

호리 관방장관은 1971년 2월 5일 한국 정부 인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하나도 쓸모없는 나쁜 자들로 일본에 두어 하나도 이롭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극히 유해인자들이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보내는 것이 한일 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사토 총리도 2월 9일 한국 인사와의 면담에서 “이들은 일본에 두어도 곤란하고, 한국에도 귀찮은 존재이니 북한지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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