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시정연설 왜 총리가 쓰고 읽고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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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가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읽은 시정연설은 이 총리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과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 이 총리 등 3부요인과 윤영철(尹永哲) 헌법재판소장, 유지담(柳志潭)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시정연설 원고를 이 총리가 썼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총리가 했는데 방송뉴스 자막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의했다’고 나왔더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대독이지만 원래가 총리 버전”이라며 “총리가 아이디어를 냈고 주도할 의지를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총리들이 대부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단순히 읽는 ‘대독 총리’ 수준에 그쳤던 것에 비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중장기 과제는 대통령, 일상적 국정은 총리’로 나눠진 현 정부의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총리에게 새로운 권한을 이양한 것이 아니라 업무를 그렇게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야권 및 여론의 냉담한 반응에 따라 대연정(大聯政) 제안을 접은 뒤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 있는 국민대통합 연석회의 구성을 이 총리에게 대신 맡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총리에게 대독시키는 것도 좋은 모양새라고 할 수 없는데 그나마 ‘사실은 연설문도 총리 작품’이라고 말하면 ‘대통령 시정연설’을 안건으로 상정한 국회의 체면은 어떻게 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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