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禁忌깨기’ 제안… 정부 고민끝 수용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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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령들 무슨 생각할지…8·15 민족대축전 때 북한 대표단이 참배할 예정인 동작동 국립묘지의 현충탑. 6·25전쟁 전사자의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다. 탑 형태가 십자형인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수호한다는 의미. 탑 내부에는 위패를 안치하는 관이, 지하에는 납골당이 있다. 높이 31m로 1967년 9월 30일 준공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호국영령들 무슨 생각할지…
8·15 민족대축전 때 북한 대표단이 참배할 예정인 동작동 국립묘지의 현충탑. 6·25전쟁 전사자의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다. 탑 형태가 십자형인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수호한다는 의미. 탑 내부에는 위패를 안치하는 관이, 지하에는 납골당이 있다. 높이 31m로 1967년 9월 30일 준공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의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방문과 현충탑 참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유할 수 있는 첫 발걸음이자 6·25전쟁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상징적 행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이 참배를 결정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6·25전쟁=남측의 북침전쟁’이란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어 우리 정부가 평가하듯 ‘순수한 선의(善意)’에 의한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어떻게 봐야 하나=현충탑 참배는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6·25전쟁 때 전사한 군인과 무명용사들에게 예(禮)를 표시한다는 점에서 파격인 동시에 일종의 금기를 깨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측이 아직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표현하는 한편 전쟁 당시 발생한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북한은 1970년 6월 22일 무장게릴라 2명을 남파해 6·25기념식에 참여할 요인들을 암살할 목적으로 현충문에 폭발물을 설치하려다 조작미숙으로 건물의 일부만 파손시키기도 했다.

남측도 북한의 국립묘지격인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나 대성산 혁명열사릉 참배는 물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금기시하고 있다.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金根植) 교수는 “분단 속에서 금기시 되어온 것을 깨뜨림으로써 현대사의 멍에를 벗어나려는 전향적인 의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앙대 법대 제성호(諸成鎬) 교수는 “북한의 행동을 액면 그대로 보는 것은 금물”이라며 “북측은 이번 참배를 통해 남측 보수층의 반북성향 약화를 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뜻?=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번 결정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결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세종연구소 백학순(白鶴淳) 남북관계연구실장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남측 임동원(林東源) 특사와 2002년 5월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로 방북한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국립묘지 참배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임 특사에게 “나도 서울에 가면 국립묘지를 찾아가 헌화하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묘소에도 참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정부의 고민=정부 당국은 북측의 참배에 대해 “민족의 불행했던 과거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출발점”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향후의 파장 등을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5일 북측의 참배의사를 전달받았지만 나흘이 지난 9일에야 수용의사를 통보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대표단의 참배에 대해 남측의 보수성향 단체들의 집단행동이 우려된다”며 “이 경우 국내여론의 분열을 통한 남남갈등 증폭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을 찾는 남측 대표단에 대해 북 측이 상호주의에 입각해 금수산기념궁전 등에 대한 참배를 요구할 경우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 중 하나.

당장 9월 21일부터 북한 백두산에서 열리는 장관급 회담에 참가할 정동영 (鄭東泳) 통일부 장관도 이런 고민에 처하게 됐다. 북한은 ‘혁명의 성지(聖地)’로 신성시 하고 있는 백두산 밀영(密營) 방문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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