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호]중국은 미국의 대체재가 아니다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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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외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본 때리기’로 지지율 회복에 성공한 집권세력은 내친 김에 나라의 틀을 바꾸려 하고 있다. 수도이전을 통한 지배세력 교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매머드 프로젝트다. 반세기 넘게 이 나라의 행보를 규정해 왔던 대외관계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대역사(大役事)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주 한 학술회의에서 만난 중국인 학자는 한국 정부의 ‘간 큰 외교’를 보고 있노라면 이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고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북방3각 동맹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러, 북-중, 북-러라는 3개의 양자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북-중관계도 과거의 혈맹관계가 아닙니다. 중국은 정상적인 양국관계를 지향합니다.”

뼈있는 지적이었다. 현 정권 신외교전략의 키워드인 남방3각-북방3각 동맹은 실재하지도 않으며(언제 한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던가), 설령 사용한다 해도 진영외교를 펼쳤던 냉전시대에나 가능했던 표현이다. 그런데 운동권 2학년 학생이나 입에 올릴 법한 낡아빠진 개념으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외교 전략을 논하고 있다. 도대체 냉전이 끝난 지 언젠데 지금의 동북아질서를 당시의 언어로 설명하려 하는가. 한반도가 ‘냉전의 고도(孤島)’라는 사실도 잊었는가.

▼북방 3각동맹은 허구▼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은 지금 허구와 싸우고 있다. 불행한 것은 격앙된 반일감정으로 인해 국민 다수가 그 잘못된 싸움의 인질이 돼 있다는 점이다. 지식인은 이러한 때일수록 ‘성난 군중’의 돌팔매질을 두려워하지 말고 할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의 횡포(the tyranny of the majority)’로 인한 ‘민주주의의 실패’를 겪게 된다.

노무현 외교의 치명적 결함은 미국과 중국을 소고기냐 돼지고기냐 하는 대체재(substitute goods) 관계로 인식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중국은 스스로를 미국과 동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1초(超)5강(强), 즉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강대국이 있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국제정세관이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을 채택했다. 그렇게 힘을 기른 중국은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서다) 전략으로 한 단계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도 미국과 ‘맞장 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 많은 힘 기르기(自强)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가 필수적이라 인식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세계판(world-plate)인 미국과 지역판(region-plate)인 중국의 위상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 채 ‘꿩 대신 닭’이라고 미국과 안 맞으면 중국과 붙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과 얼굴 붉히고 온 한국을 중국이 환영해 줄 거라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그런 한국은 중국에 더 가볍게 보일 뿐이다.

▼脫美는 日우경화 부추겨▼

탈미(脫美)의 위험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토록 목 놓아 비난하던 일본의 우경화를 도와줄 뿐이다. 한일관계는 더욱 불리해진다. 뿐만 아니다. 한미관계의 부실화는 북한에 대한 통일된 대응의 결핍으로 ‘북한의 중국화’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처럼 무모한 탈미외교가 가져올 후과는 너무나 크다. 동북아 중심국가의 영광이 아니라 동북아 ‘왕따’국가의 악몽이 있을 뿐이다. 탈미가 나라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라는 ‘위대한’ 착각이 몰고 올 끔찍한 결과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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