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꺾어지는 해’ 기대와 우려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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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북한 문제를 전망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꺾어지는 해’라는 표현이다. 중요한 국가적 기념일을 5년, 10년 단위로 ‘꺾어’ 평소보다 성대하게 치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최근 이 말이 부쩍 등장하는 것은, 새해엔 핵문제와 남북관계에서 무언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기를 바라는 소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올해는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10월 10일)이자 선군(先軍)정치 10년차를 맞는 시점이다. 당이 모든 국가기관의 우위에 서는 북한체제에서 당의 ‘환갑’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행사다. 여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질 통치가 10년을 넘겼음을 의미하는 선군정치 10주년이 겹쳤으니 북한 지도부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북한 언론은 정초부터 선군, 선군정치, 선군혁명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5주년을 ‘꺾는다’. 그동안 걸핏하면 ‘민족공조’를 내세워 온 북한이 이 좋은 명분을 그냥 넘길 리는 만무하고, 남한 정부 역시 이를 계기로 대화 복원에 발 벗고 나설 태세다. 어찌됐든 남북 당국 간 대화는 재개되겠지만 ‘꺾어지는 해’에 걸맞은 내실 있는 대화가 이뤄지겠느냐는 점이 문제다.

한민족 전체로 보면 2005년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00주년, 광복 60주년을 맞는 해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100년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꺾이는’ 시점이다. 남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기회가 다시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북한이 2005년 ‘꺾어지는 해’를 근본적인 변화의 계기로 활용하기 바란다. 북한 매체가 선군정치를 아무리 선전한들 ‘지난 10년’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 북한의 현실이 잘 보여 준다. 핵문제는 북한을 갈수록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고, 경제난 식량난과 탈북 행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북한 지도부가 ‘발상의 대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여건도 꽤 개선됐다고 본다. 그동안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전면적인 개혁 개방에 나설 경우 체제 존립에 끼칠 위험을 우려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보장을 여러 차례 약속했고, 중국이 북한을 받쳐 주고 있으며, 남한 또한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만하면 ‘자발적인 체제 변형’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마련됐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이 ‘꺾어지는 해’마저도 유야무야 넘기려 한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대북(對北) 공세를 한층 노골화할 것이고, 북한 체제 내부의 이완과 균열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북한에 대해 ‘강요된 변화’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런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을 부른다는 점에서 남한도 부담스럽다.

북한 지도부는 ‘꺾어지는 2005년’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은 북한의 운명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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