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지금이라도 다시 탄핵할 것"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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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정치권을 뒤흔든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최병렬(崔秉烈) 전 한나라당 대표. 그는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당시의 탄핵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반추하고 있을까. 결과적으로 자신의 대표직 사퇴로 이어진 탄핵 역풍을 체험하면서 혹시 후회는 하고 있지 않을까.

19일 오후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찾아가며 가슴에 품은 이런 궁금증은 최 전 대표를 만나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풀렸다.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전처럼 똑같이 탄핵을 할 것입니다. 탄핵사유가 있다면 탄핵은 백번이라도 옳다고 봅니다." 그의 답은 명쾌했다.

반바지와 헐렁한 셔츠 차림에 창문으로 스며드는 겨울 오후 햇살까지, 최 전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방 분위기는 온화했지만 최 전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탄핵 얘기는 날이 서 있었다.

"당시 탄핵의 법적 요건은 충분했고 탄핵하는 게 마땅했다. 다만 탄핵을 위한 정족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마지막 기자회견과 남상국 전 대우건설사장의 자살 등으로 한나라당 표가 결집되고 자민련까지 합세해 탄핵은 가결됐다."

최 전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해냈다. 자신에게는 물론 대한민국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발언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지금 나라가 어떤 지경입니까. 국가안보는 위험에 처해있고, 서민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습니까. 이는 탄핵이 되고 대통령을 다시 뽑았어야 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확고한 생각 때문일까. 한 때 탄핵추진을 최 전 대표의 대통령 보궐선거 출마설과 연결짓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를 음해하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최 전 대표는 "스스로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으면서도 대통령에서 물러날 정도는 아니라고 한 것은 모순이다"면서 "19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가결한 탄핵안을 헌재가 존중해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탄핵역풍에 대해서도 최 전 대표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을 빼앗긴 것은 탄핵이 잘못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방송 때문이다"고 잘라 말했다. 방송이 탄핵의 부당성을 거의 매일 보도하는데 국민의 정서가 동요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취지였다.

그러면서도 최 전 대표는 탄핵역풍으로 아깝게 총선에서 낙선한 한나라당 소속 후보들에게 미안하고, 당을 위기에 건진 박근혜(朴槿惠)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최 전 대표는 탄핵역풍이 한창일 때 대표직을 박 대표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때문에 그의 복귀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내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출마설이 나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전 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정계를 은퇴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지켜보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책 읽고,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최 전 대표는 요즘처럼 한가롭고 편안할 때가 없다고 한다.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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