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도 韓流?…‘올인’ ‘실미도’ 비디오 돌려보기 성행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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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도시지역에서는 주민들이 한국 영화나 TV 연속극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이 유행이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한국 여주인공들의 헤어스타일도 북한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10월 한 달간 북한에서 지내다 돌아온 한 일본 소식통은 16일 “한국의 TV 드라마 ‘올인’이나 북파공작 특수부대 실화를 다른 영화 ‘실미도’까지 비디오로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 당국은 한국 비디오 유통을 단속하고 있지만 적발한다 해도 과거처럼 엄벌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어, 저거 ‘올인 스타일’이네.”

평양에 머물던 어느 날 그와 길을 같이 걷던 북한 친척이 앞에 가던 젊은 여성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올인’이 한국의 인기 연속극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그는 어리둥절해했다.

북한 친척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비디오는 중국 국경을 통해 공산품과 함께 들어온다. 드라마를 본 북한 여성들이 미장원에서 ‘올인’ 여주인공처럼 해달라고 요구하다 보니 ‘올인 스타일’이란 유행어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김일성을 습격하려던 특수부대의 실화를 다룬 영화 ‘실미도’도 비디오로 나돌고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위대한 수령’을 암살하려는 남한 특수부대를 다룬 영화를 평양에서 본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

이런 비디오는 아는 사람끼리 은밀히 돌려보기 때문에 적발도 쉽지 않다고 한다. 보위부에 적발당해도 예전처럼 수용소에 보내지는 등의 혹독한 처벌은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단속을 하는 관리나 당 간부들도 이미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비디오로 많이 보아 ‘저항감’이 크게 없어진 때문이라고 한다.

한 대학생은 친구한테 빌린 한국 비디오를 돌려주다 적발됐는데 비디오만 압수당한 뒤 말로만 훈계를 받고 풀려났다.

비디오는 중국을 통해 유입되기 때문에 신의주 등 북쪽 도시에서 먼저 유포된 뒤 평양 쪽으로 확산된다. 이 때문에 평양 주민들은 “우리는 시골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한국 문물을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이 ‘선진도시’라는 뜻이다.

한국 영화나 비디오의 범람이 북한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정권의 통제력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사상 재검열, 장성택 숙청, 당 간부의 대대적인 인사 등은 주민들의 ‘남조선 영상문화 즐기기’로 드러난 사회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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