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총리 역할분담론]靑 ‘政爭 비켜가기’ 포석인듯

  • 입력 2004년 8월 1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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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오른쪽) 등 국무위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 분담을 제시했다.- 박경모기자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오른쪽) 등 국무위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 분담을 제시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제기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분담론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대통령은 중장기적인 국정과제에 집중하고, 일상적인 국정은 가급적 총리에게 맡기겠다”는 뜻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역할분담론을 제기하면서도 “구체적인 업무 분담은 순차적으로 명료하게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해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 경계선을 딱 부러지게 긋지는 않았다.

다만 새롭게 제시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각 부처가 대통령비서실에 올리는 모든 보고서를 총리실에도 보고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무회의를 총리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적인 국정 현안을 보고받고 지시하는 권한을 이해찬(李海瓚) 총리에게도 부여함으로써 각 부처 업무의 조정 및 총괄 권한을 이 총리에게 상당 부분 넘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원가 연동제 같은 현안은 이 총리가 직접 나서서 부처간 또는 당정간 조율을 통해 풀어 나가고, 노 대통령 자신은 국가과학기술혁신체계 수립이나 지방균형발전전략 같은, 5∼1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국정과제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의 업무 경계선이 모호한 데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제 아래서 총리의 권한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장악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 같은 역할분담 구조에 대해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책임총리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내각통할권’을 실질화한다는 의미이며,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권한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역할 분담론은 말 그대로 국정운영에 있어서 역할을 나누는 것일 뿐 최고권력자로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력의 분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의 별도 기관인 국가정보원, 감사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은 여전히 대통령이 직접 관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행정부 통제의 핵심 권한인 장 차관 등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도 여전히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제기한 총리와의 역할분담론은 모든 국정현안의 부담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쏠리는 데 대한 예방책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이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능을 갖고 있다는 시각과 함께 현실정치에서 대통령을 정쟁의 표적으로 삼는 관행이 혼재해 있다”고 밝혀 일상적인 국정운영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둠으로써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비켜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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