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농성 특징]‘과격 농성-강경 진압’ 악순환 되풀이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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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의 시민회관 점거 농성, 7월 월남참전전우회 회원들의 경부고속도로 점거 농성, 9월 화물연대 회원들의 부산 주요 컨테이너 수송로 점거 농성….

올 들어 끊이지 않았던 과격 점거 농성들이다.

그러나 올해 벌어졌던 62건의 과격 점거 농성 중 요구사항을 관철한 경우는 16건(25.8%)으로 4분의 1에 불과하다.

과격농성 중 상당수가 경찰이나 정부의 강경 대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성 방식은 더 과격해지고, 또 정부의 대응은 더욱 강경해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뚜렷한 명분을 갖고 농성 중에도 협상의 길을 열어놓은 합리적인 농성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들이 많았다.

▽실패한 농성=7월 19일 오전 2시40분경 경기 고양지역 회사택시 운전사들이 일산구 마두동 중앙로 왕복 8차로를 택시로 가로막은 뒤 “경기지역에 와서 영업하는 서울택시들을 단속하라”며 농성을 벌였다.

이날 오전 마두역 나이트클럽 앞에서 고양과 서울택시 운전사들이 자리다툼을 벌였는데 경찰이 마침 서울택시가 비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고양택시를 단속한 것이 발단이었다.

고양택시 운전사 200여명은 순식간에 도로를 점거했고 이 때문에 이날 오전 내내 주변 도로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경찰의 대응은 강경했다. 경찰은 택시 100여대를 모조리 견인하고 운전사 4명을 구속, 10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농성하던 택시 운전사들은 경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우리 주장을 알릴 만큼 알렸으니 해산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물러서지 않았다. 즉흥적인 농성이 경찰의 강경대응을 유발한 대표적 사례다.

7월 18일에는 월남참전전우회 회원 260여명이 경기 안성휴게소 근처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월남 파병자 명예회복과 국가유공자 대우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차량 31대를 동원해 서행운전하거나 고속도로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여 온종일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농성자 전원이 연행되고 6명이 구속됐다.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성공한 농성=10월 말 신용보증기금 감사에 대선 당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모 은행 감사실장 출신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자 노조가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신보노조는 “고령의 정치인을 정치적인 이유로 감사에 임명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노조 간부들이 노조 사무실에서 23일 동안 철야농성을 벌였고 자신들의 주장을 집요하게 경영진과 외부에 알려나감으로써 직원들의 동의를 얻었다. 결국 재정경제부는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 감사 내정을 철회하고 새 감사 후보를 공모했다. 이 농성 이후 재경부는 ‘감사 공모제’를 도입해 감사 임명 때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어날 소지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기도 했다.2400여명이 국적 회복을 주장하며 서울시내 교회 8곳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조선족들의 농성도 사회적으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집회·시위와의 차이=농성은 한 자리에 줄곧 머물며 버티는 것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보이기 위해 모이는 것은 시위나 집회와 비슷하다. 그러나 농성은 장기적으로 이뤄져 상황에 따라 극단적이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건물 안에서 하는 농성은 집회나 시위처럼 신고의 대상은 아니지만 건물주가 원하면 농성자들은 형사 또는 민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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