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깃발'명분…파병 발표만 남았다

  • 입력 2003년 10월 1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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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결의안이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함에 따라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데 큰 부담을 덜게 됐다.

정부는 아직 파병 여부에 관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파병의 명분을 확보한 만큼 한미관계를 고려해 파병 쪽으로 큰 가닥을 잡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분위기다.

‘파병 불가피’라는 대원칙은 대체로 섰고, 전략적 관점에서 발표 내용과 시기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는 점만 남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는 ‘유엔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해 파병 결정을 공식화하는 것이 오히려 국론 분열을 막고 20일 열릴 한미정상회담을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다수의 주장과 ‘아직 공론화가 미흡한 상황에서 서둘러 공식화할 필요가 없다’는 소수의 주장이 맞서 있다.

따라서 정부가 당장 파병 결론을 공식화하지 않더라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막되는 태국 방콕에서 20일 열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칙적인 파병 방침을 통보할 가능성이 높다.

12일부터 15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한미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한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16일 브리핑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면 우리들도 일하기 좋은 (한미) 관계가 구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많은 것을 공감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가 이라크 파병 문제임을 고려해 볼 때, 이 차관보의 언급은 정부가 미국에 ‘좋은 소식’을 전달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파병 문제를 놓고 보이지 않게 의견 수렴을 계속해 왔다. 노 대통령은 최근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을 관저로 불러 파병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또 16일에는 경제 현안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됐던 원로 경제인과의 간담회에서 파병에 관한 의견을 따로 들었고, 17일에는 파병 반대론을 펴고 있는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났다.

특히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는 당초 APEC 정상회의 이후인 이달 말경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16일 오후에 서둘러 일정이 잡힌 것이어서 노 대통령이 ‘조기 파병 공식화’라는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또한 17일 재향군인회 임원단 오찬 등에서 노 대통령은 파병 문제에 대한 발언을 했으나, 지금까지 계속해 온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언급을 이날은 하지 않았다.

한편 국방부는 당초 이달 중순경 파병 결정을 예상하고 추진해 온 파병부대 선정과 훈련방법 등 전반적인 파병 준비과정에 대한 세부 검토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국방부는 파병 부대의 후보로 특전사와 특공여단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한편 건설 의료지원단을 대폭 포함시켜 3000∼4000여명의 병력을 꾸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파병 결정이 조만간 내려진다고 해도 부대 선발과 현지 적응훈련 등을 위한 소요기간을 감안하면 연내 파병은 불가능하며 최소한 내년 2월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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