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정착시스템 허점… 범죄유혹 노출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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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가 1998년부터 매년 두 배씩 급증하고 있으나 이들이 우리 사회에 안착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 미흡해 범죄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결과를 낳고 있다.

탈북자가 연루된 범죄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올 들어서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범죄만 3건이나 발생했다. 6월 현재 국내 거주 탈북자는 34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탈북자 범죄 실태=5월 이모씨(28·여)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건설회사의 예금통장을 훔쳐 5억여원을 인출한 뒤 중국의 한 은행으로 빼돌리고 잠적했다.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탈북자 3명이 낀 마약 밀반입 조직이 서울지검에 적발됐다. 이들 중 수배를 받고 있는 탈북자 오모씨는 중국을 오가며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들여와 중간판매책인 탈북자 박모씨를 통해 국내에서 판매했다.

앞서 4월에는 96년 탈북한 윤모씨(42)가 동거하던 애인 박모씨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박씨와 박씨의 언니, 애인 등 3명을 서울의 자기 집으로 오게 해 흉기로 살해한 뒤 태국으로 달아났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98∼2002년) 탈북자가 연루된 범죄는 상해 절도 폭력 62건, 교통법규 위반 59건 등 모두 152건. 탈북자가 늘어난 만큼 범죄 건수도 늘고 있는 추세다.

▽사회적 편견이 범죄 촉발=2000년 8월 서울에 온 탈북자 김모씨(36)는 “첫 직장에서 동료직원들이 ‘왜 남한에 왔느냐, 탈북자들 때문에 세금을 더 내지 않느냐’고 말할 때마다 속이 상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지난해 초 자신을 멸시하는 동료직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치료비를 물어줬고 그 뒤 회사 내에서 철저히 ‘왕따’를 당하다 직장을 그만뒀다.

또 김씨와 같은 시기에 국내에 온 탈북자 최모씨(67)는 “북한이나 중국 등에서 범죄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의 경우 한국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마약 밀반입 혐의로 검찰에 적발된 탈북자 오씨 등도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치소를 들락거리다가 “마약장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국내 폭력조직의 제의에 쉽게 넘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탈북한 최모씨(45·여)는 “입국을 주선한 브로커들의 집요한 빚 독촉 때문에 범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그들이 입국을 도와 준 탈북자들에게 1인당 평균 1000만원가량을 요구하고 있는데 탈북자들은 정부지원금을 정착비로 쓰다보면 브로커에게서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탈북자 정착 시스템 미비=정부는 탈북자들에게 2개월간의 사회적응교육을 실시한 뒤 1인당 3600여만원(1인 기준)의 정착지원금과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사회체제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이 이 정도의 ‘배려’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탈북자들의 호소다.

정부는 2000년부터 탈북자에 대한 자활 및 자립을 돕는다는 취지로 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탈북자의 취업을 도와줄 ‘취업보호담당관’을 5년간 배정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탈북자 최씨(67)는 “원만한 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직업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탈북자가 북한에서의 직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고 직업이 없는 탈북자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전문가인 김영수(金英秀·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북자들이 중범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특화된 재활프로그램을 정착 초기에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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