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대출서류 조작 의혹]대출후 뒤늦게 급조한듯

  • 입력 2002년 10월 4일 06시 53분


산업은행이 의원들에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현대상선의 당좌대월 신청서류들이 ‘가짜 서류’라는 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대북(對北)지원설’ 의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회 재경위원회와 정무위원회는 4일 산업은행과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감에서 이 문제를 포함해 현대상선의 산은 대출금 4900억원의 사용처, 계좌추적권 발동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대출서류, 가짜 의혹〓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은 “산은이 답변자료로 제출한 현대상선의 대출서류를 보면 정상적인 것과는 너무 다른 부분이 많은 허점투성이여서 뒤늦게 위조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은 당좌대월로 4000억원을 빌리기 위해 2000년 6월5일 ‘차입신청서’를 산은에 냈고 대출 승인이 난 6월7일 ‘당좌대월약정서’와 ‘융자금영수증’을 제출하고 4000억원을 인출했다.

은행은 일반적으로 차입자가 대출서류의 해당 항목을 모두 채우지 않으면 일일이 지적해 메우게 한다. 그러나 ‘차입신청서’에는 거액을 빌려주는 데도 대출종류, 상환기간, 담보제공계획, 자본진 및 경영기술진 등 주요 항목이 빈칸으로 남아있다.

‘당좌대월약정서’와 ‘융자금영수증’에도 현대상선이 제출한 다른 대출서류와는 달리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의 자필 서명이 없다. 또 사업장 소재지가 표시되지 않은 현대상선의 다른 직인(職印)이 찍혀있다. 심지어 당좌대월약정서 제1조의 대월한도에는 4000억원을 빌려주고도 ‘금 사십억원정’으로 엉뚱하게 기재돼 있다. 거액을 대출하는 중요사안인 데도 이 같은 실수가 있는 것은 급조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융자금영수증은 다른 것과 달리 결재란과 여신기호란이 좌우 반대로 배치돼 있다.

엄 의원은 “현대상선의 산은 대출서류들을 살펴보면 한눈에 김 사장의 필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는 사인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의 대출서류가 허위로 조작됐다는 엄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파문이 엄청나게 커질 소지도 있다.

▽산은의 업무처리규정 위반〓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의원은 “산은이 현대상선에 당좌대출금 만기를 연장해줄 때 업무처리 규정을 위반했다”고 위법사항을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2000년 6월7일 당좌대출 4000억원 약정을 맺고 모두 인출했다가 만기(30일) 하루 전인 6월29일 3000억원만 갚고 만기연장(3개월) 조치를 받았으며 △다시 만기가 돌아온 9월28일에도 입금절차를 생략한 채 기일을 연장받았다.

규정에는 당좌대출금의 만기가 돌아오면 일단 대출금을 모두 갚은 뒤 만기를 연장하도록 돼있다. 산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대상선을 너무 봐줬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산은은 “현대상선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4000억원을 마련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규정위반 사실은 시인하고 있다.

임 의원은 또 “산은의 일시당좌대출은 연 2회를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6월30일, 9월28일 두 차례에 걸쳐 연장해 3회에 걸쳐 대출해주는 위법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산은은 이밖에도 9월27일 2차 연장 때는 300억원만 입금받고 3700억원은 신규대출로 처리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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