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원 3박4일 방북기]김정일 전용기로 평양에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58분


《11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사진) 창당준비위원장이 3박4일 동안의 방북기를 공개했다. 이는 박 의원이 귀국 이후 연합뉴스 기자에게 구술한 내용이다. 다음은 요약.》

10일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캠핀스키 호텔에서 1박을 했다. 11일 오전 평양행 고려항공을 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는 전용기를 타고 오라”는 전갈이 왔다. ‘북측이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내부는 일반 항공기와 별 차이가 없었다.

▼마라톤 정성옥선수와 노래방▼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하니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방을 안내하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머문 곳”이라고 했다. 12일엔 비가 뿌렸다. 숙소 직원들은 내가 반가운 비를 몰고 왔다며 좋아했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평소대로 단전호흡을 한 뒤 산책을 했다.

아침은 꽤 성찬이었다. 한식과 양식이 섞여 있었는데 ‘딸기 속 닭알 수프’라는 음식이 눈에 띄었다. 일종의 딸기 파이였다. 점심은 옥류관에서 여성대표 10여명과 함께했다. 조선여성협회회장, 인민배우, 마라토너 정성옥씨 등이 나왔다. 옥류관 노래방에서 ‘고향의 봄’을 합창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북한 노래 ‘휘파람’이 한국에서 유행이라고 했더니, 몇 명이 이 노래를 열창했다.

오후엔 모란봉을 찾았다. 학생소년궁전도 관람했는데, 서예실에서 한 어린이가 ‘우리는 하나’라는 글을 즉석에서 써줬다. 어린이 1000여명이 한 시간 동안 특별공연을 해줬다.

13일 창광유치원에 가서는 같이 춤추고 달리기도 했다. 평양산원에 갔더니 김 대통령이 기증한 의료기구도 있었으나 사용 시스템이 달라 방치돼 있었다.

이날 저녁 김 위원장을 면담했다. (선친들 간에) 과거 역사가 있어서인지 탁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말미에 그가 “빙 돌아갈 필요 없이 판문점을 통해 가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반가웠다.

▼金, 판문점 귀환 제의▼

만찬에는 한식과 양식이 같이 나왔고 냉면도 올랐다. 김 위원장은 “메뉴가 잘못됐다. 냉면은 냉면 하나만 먹어야지, 다른 것과 같이 먹으면 맛이 나지 않는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선친과 김일성 주석 간에 얽힌 비사를 화제로 올렸다. 김 주석 생전에 많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7·4남북공동성명의 교섭 과정을 전하며 선친을 높게 평가했다.

14일 개성을 거쳐 판문점으로 왔다. 평양∼개성간 도로를 따라 아카시아가 만발해 있었다. ‘남북이 이렇게 가깝구나. 이 길로 왕래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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