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공작 파문]「흑금성」,北 안방 드나들듯

  • 입력 1998년 3월 19일 20시 09분


‘흑금성’. 이름도 을씨년스러운 암호의 인물.

안기부와 북한을 오가며 ‘북풍’매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암호명 ‘흑금성’의 톱 레벨 공작원 박채서(朴采緖·44·광고대행사 아자커뮤니케이션 근무)씨의 행적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충북 청주 C고등학교를 나와 육군 정보부대 장교로 복무하면서 대북정보수집에 많은 공을 세운 인물. 90년대 초 육군대학을 3등으로 졸업, 육군참모총장상을 받기도 했으며 국방대학원 정보관련 학과의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박씨는 예편 이후부터 안기부 고위관계자의 지시를 받고 공작원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첩보활동을 위해 대북사업을 추진중이던 광고회사 아자커뮤니케이션 사장 박기영(朴起影·41)씨와 알게돼 사업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대북 ‘밀사’역할을 병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박사장은 “방북 당시 북측에서 내가 대북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청을 해줄 수 없다고해 사업이 난항을 겪을 때에도 박씨가 정부측과 북한측을 설득해 방북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 광고대행사와의 관계 ▼

이들의 최초 만남은 94년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가 군에서 예편한 뒤 박사장이 살고 있던 우성아파트 맞은편 집으로 이사를 오게된 것. 앞뒷집에 살던 두사람은 동갑내기 막내 딸이 같은 유치원에 다녀 부인들을 통해 친분을 쌓기시작했다.

박사장은 “이사를 온 뒤 2, 3개월이 지나서야 박씨와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됐으며 박씨의 생일이 내 생일과 똑같았고 또 딸만 둘이 있는 것도 비슷해 친분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을 실패경험이 있는 대북사업가로 소개, 대북사업승인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박사장과 사업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사업 파트너의 관계를 맺게 됐다.

박사장은 “처음에는 박씨가 북한에서 광고를 찍는 것은 허황된 사업구상이라며 말렸지만 계속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이 알고 있던 중국인맥과 북한 고위층을 동원하면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사장은 “박씨는 최근까지 일주일에 한두번씩 회사에 나와 대북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보았으며 정식직원은 아니었지만 일처리 능력이 탁월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 북한에서의 행적 ▼

박사장은 19일 “박씨는 북한을 수십차례 드나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며 “3대의 차량을 이용, 12일간 평양 개성 묘향산 백두산 금강산 등 명승지를 돌아다니는 동안 안내원 명목으로 나온 북측 정보요원이 늘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박사장은 또 “박씨가 일과가 끝나는 오후 9시 이후 다른 방에서 이들과 접촉하곤 했다”고 말했다.

▼ 잠적 ▼

박씨가 비밀 공작원 ‘흑금성’이라는 사실이 보도된 19일 박씨의 가족은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 이 아파트 경비원 임모씨(62)는 “어제 오후 3시경 박씨가 회색 그랜저 승용차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을 태우고 어디론가 나간 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18일 저녁 모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흑금성’임을 사실상 시인하면서 “북풍관련 안기부문서는 공식문건은 아니며 이번 사건은 집권세력에 대한 종전 기득권세력의 저항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집권세력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혼란이 빚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도를 듣고 아파트로 찾아온 남동생 동서(東緖·38·상업·서울 서초구 양재동)씨는 “형이 사업상 북한측과 자주 만났으며 모방송국 프로에서 이 내용을 밝힐 정도로 공개적으로 일해왔다”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 정부에 협조했지만 막상 ‘북풍공작’사건이 터지자 안기부는 형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헌진·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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