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시대/뒤바뀐 적과 동지]『政敵들을 품안으로』

  • 입력 1997년 12월 20일 09시 36분


한 번 동지가 「평생 동지」이고 한 때의 적(敵)이 「영원한 적」이라면 과연 김대중(金大中·DJ)정권의 탄생이 가능했을까. 김대중정권 탄생의 흥분과 충격이 채 가라앉지 않은 19일, 많은 정치인들이 김대중당선자의 「DJP정권」을 되돌아보면서 갖는 질문 중엔 분명 이같은 되물음도 들어 있다. 만일 DJ에게 한때의 적이 영원한 적이었다면 오늘의 그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DJ는 선거기간에 자신과 김종필(金鍾泌·JP)공동선대회의의장, 그리고 박태준(朴泰俊·TJ)자민련총재의 3자연합을 「황금의 트리오」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황금의 트리오」는 정권교체를 위한 「적과의 동침」이기도 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두 축으로 하는 DJP연합의 「위계질서」를살펴보면대답은더욱극명해진다. 공동선대위를 중심으로 보자. 정점엔 대통령당선자인 DJ가 있고 다음으로 김종필의장, 박태준상임고문, 박준규(朴浚圭) 김원기(金元基)후보고문, 조세형(趙世衡) 김복동(金復東)수석부의장, 이종찬 후보지원단장이 있다. JP만 해도 그가 95년 지방선거 직전 민자당을 탈당하기 전까지는 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92년 대선 때 JP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는 「용공음해」를 주도, DJ의 대권3수를 좌절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DJP의 JP는 15대 대선에서 김당선자를 「색깔시비」로부터 구해낸 안전판이었다. TJ 역시 이른바 「DJT전략」에 따라 지난 10월 일본에서 회동하기 전까지는 평생 반대진영에 있었던 「박정희 맨」이었고 박준규상임고문도 60년대 야당시절 한때 동지였던 때를 제외하고는 3,4,5,6공을 거치는 동안 DJ를 탄압한 집권당 소속 중진이었다. 이종찬단장도 김당선자가 핵심역이던 「서울의 봄」을 좌절시킨 신군부에 고용된 정치인이었다. 그는 그러나 95년 지방선거 직전 「김대중대통령 만들기」로 돌아선 국민회의의 신주류다. 선거초반 화제를 모았던 엄삼탁(嚴三鐸)특별지원단본부장은 「돌아선 적」의 상징같은 존재다. 이들이 김당선자에게 「평생의 적」이었다가 동지로 돌아선 사람들이라면 선대위수뇌부의 김원기후보고문은 「평생동지」에서 「한때 적」으로 갈라섰다가 다시 동지로 돌아온 셈이다. 김고문은 88년 여소야대 시절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을 만큼 김당선자의 신임이 깊었으나 김당선자가 민주당을 떠나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합류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국민통합추진회의를 이끌며 3김청산을 외쳤다. 김고문과 함께 선거 막판에 합류한 김정길(金正吉) 노무현(盧武鉉)부총재도 통추출신이다. 하지만 김당선자는 19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자민련 김종필 박태준총재께서 몸을 아끼지 않고 정성을 다해 협력해주신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고 통추에 대해서도 사의표시를 아끼지 않았다. 김원기고문 등 통추멤버들이 지난달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엔 구민주당 분당에 대한 부담때문이었는지 『마음의 빚을 갚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당선자의 정치역정은 무려 40년에 걸쳐 있어 그만큼 스쳐간 정치인이 많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와 「이―조 연대」로 선거 막판까지 괴롭힌 조순(趙淳)한나라당총재는 김당선자가 서울시장 선거에 공천했던 인물로 그의 입장에서 보면 대표적인 「배덕자」인 셈이다. 김대중대통령후보지명 전당대회 때는 15대 대선이야말로 「DJ대통령만들기를 위한 천시(天時)」라고까지 했던 조순전시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조연대」로 한나라당총재에 추대된 후 「DJ불가론」의 대표주창자로 변신했다. 「이―조연대」에 따라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의장이 된 이기택(李基澤)전민주당총재 역시 김당선자와 정치적 동반관계가 엇갈린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당선자는 15대 대선출마의 장정에 오른 이후 줄곧 적을 내편으로 만들기에 안간힘을 썼다. 혼자 힘이나 기존의 동지만으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세 번의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DJP 연대나 평생 자신을 탄압한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생가를 그의 외아들 지만(志晩)씨와 함께 방문한 일도 그런 자각과 새로운 노력의 산물이었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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