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삼탁(嚴三鐸)파일」이란 게 과연 있을까.
92년 대선 당시 안기부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전병무청장이 곧 국민회의에 입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자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엄삼탁 파일」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엄씨가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김영삼(金泳三)후보의 대선자금이나 안기부의 「김대중(金大中)죽이기 공작」과 관련된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회의 김총재도 대선승리의 「관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대통령의 선거중립을 「강제」하기 위해 「엄삼탁 파일」을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대체로 「엄삼탁 파일」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여권은 그런 파일이 있을 리 없다고 무시하는 쪽이다.
안기부 간부를 지낸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다만 『엄씨는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후보에게 줄을 댄 대표적 「6공 실세」였다』면서 『거의 노골적으로 안기부조직과 자금을 동원, 「김영삼 대통령만들기」에 앞장선 만큼 적어도 자신이 직접 관여한 자료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설령 「엄삼탁 파일」이 있다 하더라도 엄씨 자신이 공범으로 참여한 일이기 때문에 폭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민회의 김총재가 엄씨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런 유의 「폭로자료」는 아닌 것 같다. 김총재의 정치스타일로 볼 때 정말 「폭로」가 목적이었다면 엄씨 입당문제를 지금처럼 「반(半)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엄씨의 「이용가치」는 뭘까.
엄씨는 현재 자신의 「안기부 노하우」를 동원, 취약지역인 대구경북 강원권의 외곽 직능단체와 ROTC를 중심으로 사조직 구축작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조직관리가 엄씨에게 거는 김총재의 주된 「기대」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대신 「보수 원조(元祖)」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와의 DJP후보단일화가 성사되고 대구경북 지역에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박태준(朴泰俊)의원에 이어 엄씨까지 가세할 경우 영남권의 「김대중 거부정서」를 희석시키는 일종의 상징적 「시너지효과(상승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특히 『선거막판 여권이 다시 김총재에게 「색깔시비」를 걸어올 것에 대비, 엄씨로 하여금 안기부의 「용공조작」 사례들을 양심선언케 하는 문제가 은밀히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