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鄭泰守(정태수) 리스트」 파문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져나가자 정치권은 위기의식속에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신한국당 등 여권은 12일 파문이 생각밖으로 확대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고민하는 모습이었고 야권은 정치적 음모설을 계속 주장하면서도 정치권에 강진(强震)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 청와대
「정태수 리스트」 조사에 따른 파장이 갈수록 확대되자 청와대측의 시각은 「당혹감」에서 「우려」로 바뀌고 있다. 당초 한보청문회에서 정치인의 한보자금 수수의혹이 대두되자 속전속결로 「옥석 가리기」를 끝내겠다는 청와대측의 뜻과 달리 예상외로 정치권, 특히 여권내의 엄청난 혼돈양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청와대측은 검찰이 새 출발을 하겠다는 의지로 공명정대한 수사를 하겠다는데 대해 동의했다』고 소환조사 착수 경위를 설명하면서 『그러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의 특수한 입장을 감안해 신중을 기해달라는 뜻도 함께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폭이 확대되면서 중진급 정치인의 이름까지 계속 터져나오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국수습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청와대측은 특히 신한국당내 민주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음모설」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도 민주계 동향을 보고받고 우려를 표명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신한국당
李會昌(이회창)대표가 이날 4,5선급 중진의원들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당내 의견수렴 작업에 나서긴 했지만 당직자들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다. 사안의 뾰족한 대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당직자들은 상황전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 있는 분위기다.
朴寬用(박관용)사무총장도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검찰로부터 소환대상자의 명단을 통보받았느냐』는 질문에 『통보받은 바 없다. 물론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만약 내가 검찰에 물어보면 국민들은 당장 「뭔가 담합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할 것 아니냐』며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金德龍(김덕룡) 朴鍾雄(박종웅)의원의 소환이 시작되고 金守漢(김수한)국회의장 金潤煥(김윤환)고문 등의 한보자금 수수설까지 튀어나오자 『이러다가는 정치판 자체가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위기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李允盛(이윤성)대변인이 이날 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우리당은 작금의 정치인 소환조사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국민이 원하는 정국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도 신한국당내에 감도는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야권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정태수 리스트」와 관련된 각종 설(說)이 갈수록 난무하자 그 정치적 배후에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야권은 조사대상 의원 규모가 신한국당에 비해 훨씬 작은 데 대해 안도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보사건에 연루되는 정치인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듯한 조짐을 보이자 정치권 전체에 대한 「물갈이론」이 대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검찰쪽에서 한보 몸체를 숨기기 위해 일련의 공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투명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국민회의는 특히 「한보자금이 창당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발끈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민련의 李圭陽(이규양)부대변인도 논평에서 『여권이 金賢哲(김현철)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여야 거물정치인의 이름을 흘려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며 『정치권을 제물삼아 현철씨를 보호하려는 정치음모를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동관·최영묵·김창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