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야, 하늘나라 가서도 아픈 친구 도와줘 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아픈 주사 잘 참아줘 감사… 마음이 착해 감사… 엄마랑 놀아줘서 감사…”
손수진씨 백혈병 딸이 남긴 용돈 100만원, 소아암 환자에 전달

손수진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딸 민지가 남긴 용돈 100만 원을 서울대어린이병원 환아 이예찬 군의 어머니(가운데)에게 전달한 뒤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손수진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딸 민지가 남긴 용돈 100만 원을 서울대어린이병원 환아 이예찬 군의 어머니(가운데)에게 전달한 뒤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처음 치료할 때 힘든 주사와 약을 잘 견디어 주어 감사. 엄마랑 침대에서 장난치며 박장대소한 시간들에 감사. 똘망똘망하고 까만 예쁜 눈, 작고 귀여운 코, 앵두 같은 입술이 정말 예뻐서 감사. 측은지심이 있는 착한 아이여서 고맙고 감사….”

2일 오후 서울대어린이병원 1층 임상1강의실. 소아암환자가족 송년회에서 엄마 손수진 씨(42)가 석 달 전 림프백혈병으로 하늘나라에 간 딸 김민지 양(12)에게 감사 메시지를 읊기 시작했다. 모두 100문장이었다. 아픔을 애써 삼키는 손 씨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환아 가족 200여 명은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2010년 10월 림프백혈병 진단을 받은 민지는 올해 8월 병이 악화됐다. 구급차를 타고 원래 머물던 병원에서 서울대어린이병원으로 급히 옮겨왔다. 민지는 구급차 안에서도 걱정하는 엄마를 향해 “괜찮다”고 위로하던 아이였다. 구급차를 뒤따라 급히 운전해 오는 아빠에게도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오라고 빨리 전화하라”고 다그쳤다. 민지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9월 3일, 사랑하는 부모 곁을 떠났다. “그렇게 마음씨가 고운 아이였는데….” 울먹이던 손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10여 분간의 긴 낭독이 끝나자 곧 특별한 전달식이 이어졌다. 바로 서울대어린이병원 병동 환아 이예찬 군(11개월) 엄마에게 손 씨가 100만 원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100만 원은 딸 민지가 생전에 모아둔 용돈 전부. 민지가 입원해 있던 서울대어린이병원 병동의 멘토 회장이 손 씨에게 예찬이를 소개해준 것이 기부를 하게 된 계기였다.

‘랑게르한스세포조직구증식증’이란 희귀소아암을 앓고 있는 예찬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치료비를 매번 대기 힘든 상황이었다. 손 씨는 “민지는 월드비전을 통해 동갑내기 아프리카 친구에게 후원도 해줬다”며 “나눔을 좋아했던 우리 딸아이도 분명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씨의 따뜻한 기부 소식이 전해지자 곳곳에서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다. 소아암병동에서 치료를 받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다른 아이의 엄마가 50만 원을,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에서 600만 원을,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1000만 원을 후원하는 등 기부금이 불어났다.

덕분에 예찬이는 어린이병동에서 항암치료를 순조롭게 받고 있다. 예찬이 엄마는 “힘들 때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손 씨는 “저희는 너무 적은 액수라 ‘생활비에라도 보탰으면’ 하는 송구한 마음으로 전달했던 것”이라며 “이 나눔을 통해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는 걸 들으니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백혈병#소아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